[2026. 05. 25. 반올림 성명/보도자료]
삼성전기 노동자 악성림프종 사망, 첫 산재인정 판결
-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 판단은 규범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또다시 확인한 판결 -
1. 판결의 의의
지난 5월 8일 서울행정법원은 삼성전기 전자소자 제조사업장에서 20년 6개월 동안 유해물질을 취급하며 일하다 악성 림프종으로 사망한 노동자 박00 님(77년생)에 대하여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내렸다(2026. 5. 8. 서울행정법원 2024구합78276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이번 판결은 삼성전기 사업장에서 발생한 ‘악성 림프종’에 대하여 첫 인정 판결이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사회보장적 성격상 업무상재해의 인정기준이 ‘의학적‧ 자연과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또다시 보여준 판결이다.
유족이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기까지 산재 신청일로부터 무려 4년 9개월이 걸렸다. 부당한 불승인 처분에 오랫동안 고통을 당해온 유가족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근로복지공단은 이번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지말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3월 8일 근로복지공단(이사장 박종길)은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사건에 대해 원칙적으로 ‘원심 존중’ 의견을 제출하는 등 상소 제기 기준을 개선한다고 밝히면서 다수 사건에 파급력이 크거나 법리 축적을 위해 대법원 판단을 구할 필요가 있는 등 상소 실익이 명확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상소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하였다. 이번 사건은 불확실한 위험이 큰 첨단전자산업 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 노출에 따른 업무상 질병 사건으로 이미 명확한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있고 이에 따른 수많은 인정 사례가 축적된 상황이므로 공단은 항소의 실익이 전혀 없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항소제기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이 부당한 불승인 처분을 남발하여 행정소송으로 내몰리는 피해자들이 너무도 많다.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행정소송까지 가야한다면 이는 이미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국회와 노동부는 산재보험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제화를 통해 근로복지공단 단계에서 신속하게 구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판단은 의학적‧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니라 법적 ‧ 규범적 관점에서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판단하는 것이라는 것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분명하게 명문화해야 한다.
2. 원고(유족) 대리인 이성영 변호사의 판결에 대한 평가
이 사건에서 진료기록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혈액종양내과)가 역학조사 자료 등을 토대로 의학적 관점에서 산재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출하였으나 법원은 역학조사에서 유해 물질의 노출 수준 평가의 문제점(과거 제한된 작업환경측정결과의 문제점) 및 여러 제한점 (컨덕터 제조현장 해외이전으로 현장조사 진행 못함)등을 지적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산재보험의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취지를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였음.
즉 법원은 의학적 ‧ 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결하였음.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이 여전히 법원과 달라 재해 노동자와 유가족에게 그 피해가 크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과제임.
3. 유가족의 소회
“남편은 삼성전기에서 20년 넘게 근무하였고 악성 림프종 진단 후 1년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은 유해물질에 항시 노출되어 일하였지만 작업 공정에 대한 자료를 회사에서 전혀 제공받지 못했고 산재신청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회사는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으며 한참 힘들때 연락을 해 서 휴직자 인사 평가 관련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회사는 남편의 치료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버림받았다고 힘들어했습니다.
남편은 림프종 진단 이전부터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고 남성불임 진단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죽기 직전까지 저에게 아기를 못 남기고 가서 미안하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남편이 죽은 지 5년이 넘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거부당했지만 법원에서라도 인정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다면 사건이 더 길어질 텐데, 지금까지도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부디 항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4. 사건 경과
1) 고인 박00(남성, 1977년생)님은 2000. 7. 18.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 입사하여 전자소자(적층세라믹 콘덴서 MLCC, 인덕터 등) 생산라인에서 설비 보전, 전자소자 배치공정 작업 등을 맡아 근무하던 중 2019년 6월 무릎부위가 부어올라 단순 피부질환으로 알고 치료하다가 조직검사 결과 2019. 12. 27. 비호지킨 림프종(피부 T-세포 림프종)을 진단 받고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2021. 2. 20. 사망하였다. 고인의 총 근무기간은 20년 6개월이며 사망 당시 만43세였고, 유가족으로 배우자가 있다.
2) 림프종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담당하는 림프계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종양을 만드는 혈액암의 일종으로 백혈병은 발생부위가 골수인 반면, 림프종은 림프절이 발생부위라는 차이점이 있다.
3) 고인의 배우자는 2021년 8월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사에 산재 유족급여 청구를 하였다. 고인이 부산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톨루엔, 크실렌, 스토다드 솔벤트, 2-부톡시에탄올 등 각종 유기용제와 전리방사선에 노출되어 림프종이 발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4)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부실한 역학조사 자료를 근거로 ‘망인이 이 사건 상병 원인물질인 벤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고, 방사선 노출도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상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2023. 5. 19. 불승인(부지급) 결정을 하였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의 내부 볼복절차를 밟아 근로복지공단 본부의 산재심사위원회에 불승인 처분의 취소를 청구하였으나 2023. 11. 15. 기각결정을 받았다. 이후 노동부 산하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하였으나 2024. 5. 14. 기각결정을 받았다.
5) 고인의 배우자는 최초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대하여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으나 산재심사위원회,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서 불승인 처분이 시정될 것으로 기대하여 이들 기관에 불승인 취소 청구를 하였으나 모두 기각결정을 받았고, 이후 2024년 8월 서울행정법원에 산재불승인(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를 하였다. 그 결과 2026. 5. 8. 법원은 고인의 사망과 업무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 부지급 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2024구합78276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판결).
5. 시사점
1) 신속성에 위배되는 지나친 장기화, 내부시정절차(심사, 재심사)의 무용성, 업무상질병 판단기준 법제화 절실
- 유족은 공단에 산재 신청일로부터 법원에서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무려 4년 9개월이 걸렸다. 근로복지공단, 산재심사위원회, 산재재심사위원회 판정까지 2년 9개월이 걸렸으나 인정받지 못하다가 행정법원을 통해 2년만에 승소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및 산재심사위원회, 재심사위원회 단계에서 전혀 시정이 되지 않는 점에 대하여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신속한 보험적용이 절실한 상황에서 공단과 심사기구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소송에 내몰리기까지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규범적 관점에서 업무상 질병에 대한 판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산재법에 인정기준의 구체적 명문화(법제화)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참고로 대법원은 「산재법상의 인과관계는 의학적, 과학적으로 명백히 규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법조문에 반영되어 부당한 불승인 판정의 피해사례가 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2) PCB, 각종 전자부품을 제조하여 온 삼성전기 사업장(부산, 세종(구 조치원), 수원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및 전리방사선 등에 노출되어 림프조혈계암이 발병해 투병하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반올림에 제보된 노동자만 하여도 11명(이 중 사망 7명)에 이른다. 하지만 기업의 산재 은폐, 정부의 소극적 태도, 너무 짧은 소멸시효(유족급여의 경우 3~5년, 요양급여의 경우 3년)로 인하여 산업재해 신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현재까지 반올림을 통해 산재신청을 하였던 삼성전기 림프조혈계암 사건은 5명이고 이 중 4명이 인정되었다. ▲고 장00(부산사업장, PCB제조, 2014년 사망, 2020년 2월 행정소송 조정권고로 산재인정받음), ▲ 권00(조치원사업장, PCB제조, 만성골수성백혈병, 2021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인정), ▲김00(수원사업장, 전자부품제조, 만성골수성백혈병, 2018년 행정소송에서 산재인정)이 백혈병으로 산재인정이 되었고, ▲ 이번에 고 박00(부산사업장, 전자부품 제조, 비호지킨 림프종, 2026년 5월 행정소송에서 산재인정)님이 림프종으로는 처음으로 인정되었다.
6. 판결문 주요 내용
1)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측에 잇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 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간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 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2) 판단
망인은 MLCC 제조 설비 중 적층설비 유지보수, 전자소자 제조파트의 인덕터 라인 설비 유지보수, 전자소자 배치공정의 원재료 배합 및 교반업무 등을 수행하면서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할 수 있는 벤젠, TCE,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유해물질의 위험성이 인식되거나 노출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시점에서 근로하였고 가족력 등이 없으며 림프종의 호발 연령보다 젊은 나이에 림프종이 발병하였다. 또한 사업장의 유해물질에 대한 누적적·복합적인 노출 외에 뚜렷한 발병원인을 찾기 어렵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비록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사(직업환경의학과, 혈액종양내과)가 역학조사 자료에 근거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제출하였으나 유해물질 노출 정도가 직업환경연구원에서 평가한 수준 이상일 수 있어 채용하기 어렵다. 즉 역학조사는 1) 망인이 유해물질 노출공정에 근무하던 기간 동안 벤젠, TCE 등을 측정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2)망인이 근무하였던 2000년대 초반에 TCE가 포함된 용제를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점 3)솔벤트 나프타가 포함된 용제가 산화되는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가 생성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보면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진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았거나 노출 수준이 미미하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4) 설령 직업환경연구원이 추정한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노출기준의 범위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5)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될 경우에는 유해요소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노출된 유해물질, 유해요소가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하여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으로 인한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내려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첨부자료>
1. 판결문(2026. 5. 8. 선고, 서울행정법원 2024구합78276,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문의>
*반올림 이종란 상임활동가/노무사 010-8799-1302
*원고대리인 이성영 변호사 010-4924-9629
[2026. 05. 25. 반올림 성명/보도자료]
삼성전기 노동자 악성림프종 사망, 첫 산재인정 판결
-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 판단은 규범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또다시 확인한 판결 -
1. 판결의 의의
지난 5월 8일 서울행정법원은 삼성전기 전자소자 제조사업장에서 20년 6개월 동안 유해물질을 취급하며 일하다 악성 림프종으로 사망한 노동자 박00 님(77년생)에 대하여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내렸다(2026. 5. 8. 서울행정법원 2024구합78276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이번 판결은 삼성전기 사업장에서 발생한 ‘악성 림프종’에 대하여 첫 인정 판결이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사회보장적 성격상 업무상재해의 인정기준이 ‘의학적‧ 자연과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또다시 보여준 판결이다.
유족이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기까지 산재 신청일로부터 무려 4년 9개월이 걸렸다. 부당한 불승인 처분에 오랫동안 고통을 당해온 유가족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근로복지공단은 이번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지말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3월 8일 근로복지공단(이사장 박종길)은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사건에 대해 원칙적으로 ‘원심 존중’ 의견을 제출하는 등 상소 제기 기준을 개선한다고 밝히면서 다수 사건에 파급력이 크거나 법리 축적을 위해 대법원 판단을 구할 필요가 있는 등 상소 실익이 명확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상소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하였다. 이번 사건은 불확실한 위험이 큰 첨단전자산업 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 노출에 따른 업무상 질병 사건으로 이미 명확한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있고 이에 따른 수많은 인정 사례가 축적된 상황이므로 공단은 항소의 실익이 전혀 없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항소제기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이 부당한 불승인 처분을 남발하여 행정소송으로 내몰리는 피해자들이 너무도 많다.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행정소송까지 가야한다면 이는 이미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국회와 노동부는 산재보험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제화를 통해 근로복지공단 단계에서 신속하게 구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판단은 의학적‧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니라 법적 ‧ 규범적 관점에서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판단하는 것이라는 것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분명하게 명문화해야 한다.
2. 원고(유족) 대리인 이성영 변호사의 판결에 대한 평가
이 사건에서 진료기록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혈액종양내과)가 역학조사 자료 등을 토대로 의학적 관점에서 산재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출하였으나 법원은 역학조사에서 유해 물질의 노출 수준 평가의 문제점(과거 제한된 작업환경측정결과의 문제점) 및 여러 제한점 (컨덕터 제조현장 해외이전으로 현장조사 진행 못함)등을 지적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산재보험의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취지를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였음.
즉 법원은 의학적 ‧ 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결하였음.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이 여전히 법원과 달라 재해 노동자와 유가족에게 그 피해가 크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과제임.
3. 유가족의 소회
“남편은 삼성전기에서 20년 넘게 근무하였고 악성 림프종 진단 후 1년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은 유해물질에 항시 노출되어 일하였지만 작업 공정에 대한 자료를 회사에서 전혀 제공받지 못했고 산재신청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회사는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으며 한참 힘들때 연락을 해 서 휴직자 인사 평가 관련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회사는 남편의 치료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버림받았다고 힘들어했습니다.
남편은 림프종 진단 이전부터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고 남성불임 진단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죽기 직전까지 저에게 아기를 못 남기고 가서 미안하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남편이 죽은 지 5년이 넘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거부당했지만 법원에서라도 인정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다면 사건이 더 길어질 텐데, 지금까지도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부디 항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4. 사건 경과
1) 고인 박00(남성, 1977년생)님은 2000. 7. 18.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 입사하여 전자소자(적층세라믹 콘덴서 MLCC, 인덕터 등) 생산라인에서 설비 보전, 전자소자 배치공정 작업 등을 맡아 근무하던 중 2019년 6월 무릎부위가 부어올라 단순 피부질환으로 알고 치료하다가 조직검사 결과 2019. 12. 27. 비호지킨 림프종(피부 T-세포 림프종)을 진단 받고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2021. 2. 20. 사망하였다. 고인의 총 근무기간은 20년 6개월이며 사망 당시 만43세였고, 유가족으로 배우자가 있다.
2) 림프종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담당하는 림프계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종양을 만드는 혈액암의 일종으로 백혈병은 발생부위가 골수인 반면, 림프종은 림프절이 발생부위라는 차이점이 있다.
3) 고인의 배우자는 2021년 8월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사에 산재 유족급여 청구를 하였다. 고인이 부산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톨루엔, 크실렌, 스토다드 솔벤트, 2-부톡시에탄올 등 각종 유기용제와 전리방사선에 노출되어 림프종이 발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4)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부실한 역학조사 자료를 근거로 ‘망인이 이 사건 상병 원인물질인 벤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고, 방사선 노출도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상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2023. 5. 19. 불승인(부지급) 결정을 하였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의 내부 볼복절차를 밟아 근로복지공단 본부의 산재심사위원회에 불승인 처분의 취소를 청구하였으나 2023. 11. 15. 기각결정을 받았다. 이후 노동부 산하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하였으나 2024. 5. 14. 기각결정을 받았다.
5) 고인의 배우자는 최초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대하여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으나 산재심사위원회,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서 불승인 처분이 시정될 것으로 기대하여 이들 기관에 불승인 취소 청구를 하였으나 모두 기각결정을 받았고, 이후 2024년 8월 서울행정법원에 산재불승인(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를 하였다. 그 결과 2026. 5. 8. 법원은 고인의 사망과 업무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 부지급 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2024구합78276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판결).
5. 시사점
1) 신속성에 위배되는 지나친 장기화, 내부시정절차(심사, 재심사)의 무용성, 업무상질병 판단기준 법제화 절실
- 유족은 공단에 산재 신청일로부터 법원에서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무려 4년 9개월이 걸렸다. 근로복지공단, 산재심사위원회, 산재재심사위원회 판정까지 2년 9개월이 걸렸으나 인정받지 못하다가 행정법원을 통해 2년만에 승소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및 산재심사위원회, 재심사위원회 단계에서 전혀 시정이 되지 않는 점에 대하여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신속한 보험적용이 절실한 상황에서 공단과 심사기구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소송에 내몰리기까지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규범적 관점에서 업무상 질병에 대한 판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산재법에 인정기준의 구체적 명문화(법제화)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참고로 대법원은 「산재법상의 인과관계는 의학적, 과학적으로 명백히 규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법조문에 반영되어 부당한 불승인 판정의 피해사례가 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2) PCB, 각종 전자부품을 제조하여 온 삼성전기 사업장(부산, 세종(구 조치원), 수원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및 전리방사선 등에 노출되어 림프조혈계암이 발병해 투병하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반올림에 제보된 노동자만 하여도 11명(이 중 사망 7명)에 이른다. 하지만 기업의 산재 은폐, 정부의 소극적 태도, 너무 짧은 소멸시효(유족급여의 경우 3~5년, 요양급여의 경우 3년)로 인하여 산업재해 신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현재까지 반올림을 통해 산재신청을 하였던 삼성전기 림프조혈계암 사건은 5명이고 이 중 4명이 인정되었다. ▲고 장00(부산사업장, PCB제조, 2014년 사망, 2020년 2월 행정소송 조정권고로 산재인정받음), ▲ 권00(조치원사업장, PCB제조, 만성골수성백혈병, 2021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인정), ▲김00(수원사업장, 전자부품제조, 만성골수성백혈병, 2018년 행정소송에서 산재인정)이 백혈병으로 산재인정이 되었고, ▲ 이번에 고 박00(부산사업장, 전자부품 제조, 비호지킨 림프종, 2026년 5월 행정소송에서 산재인정)님이 림프종으로는 처음으로 인정되었다.
6. 판결문 주요 내용
1)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측에 잇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 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간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 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2) 판단
망인은 MLCC 제조 설비 중 적층설비 유지보수, 전자소자 제조파트의 인덕터 라인 설비 유지보수, 전자소자 배치공정의 원재료 배합 및 교반업무 등을 수행하면서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할 수 있는 벤젠, TCE,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유해물질의 위험성이 인식되거나 노출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시점에서 근로하였고 가족력 등이 없으며 림프종의 호발 연령보다 젊은 나이에 림프종이 발병하였다. 또한 사업장의 유해물질에 대한 누적적·복합적인 노출 외에 뚜렷한 발병원인을 찾기 어렵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비록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사(직업환경의학과, 혈액종양내과)가 역학조사 자료에 근거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제출하였으나 유해물질 노출 정도가 직업환경연구원에서 평가한 수준 이상일 수 있어 채용하기 어렵다. 즉 역학조사는 1) 망인이 유해물질 노출공정에 근무하던 기간 동안 벤젠, TCE 등을 측정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2)망인이 근무하였던 2000년대 초반에 TCE가 포함된 용제를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점 3)솔벤트 나프타가 포함된 용제가 산화되는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가 생성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보면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진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았거나 노출 수준이 미미하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4) 설령 직업환경연구원이 추정한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노출기준의 범위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5)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될 경우에는 유해요소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노출된 유해물질, 유해요소가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하여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으로 인한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내려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첨부자료>
1. 판결문(2026. 5. 8. 선고, 서울행정법원 2024구합78276,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문의>
*반올림 이종란 상임활동가/노무사 010-8799-1302
*원고대리인 이성영 변호사 010-4924-9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