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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및 논평 [성명/보도자료] 앰코 반도체 여성 노동자의 유방암 산재 인정 판결을 환영한다.

반올림
2026-04-21
조회수 1606

[2026-04-21 반올림 성명]

앰코 반도체 여성 노동자의 유방암 산재 인정 판결을 환영한다.

- 악취와 분진 발생 등 문제의 ‘앰코’ 사업장에 대한 재해조사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추상적 근거 만으로 불승인 처분한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잘못을 지적한 판결.

- 업무와 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는 ‘사회통념 상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정도로만 증명하면 족하다’며 규범적 인과관계를 재확인한 판결.

- 부당한 불승인 남발로 행정소송으로 내몰리는 산재 피해자들... 더 이상의 고통은 안 된다! 

국회와 정부는 규범적 인과관계 법제화하고 판정위원회를 근본부터 개혁하라!

- 이번 산재인정을 계기로 앰코 회사는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파악과 합당한 보상, 작업환경개선, 안전한 근무환경을 제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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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 16일 서울행정법원은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10년 8개월) 및 SK하이닉스 사내하청회사(3년 3개월)에서 일한 반도체 여성노동자의 유방암에 대하여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14년 동안의 야간 교대근무에 더하여 악취와 분진 발생 등 유해물질 노출이 심했던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도 없이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추상적 근거만으로 불승인 처분한 잘못을 지적하는 올바른 판결이다.

 

또한 그동안 반복되어 왔던 산업재해 판결과 마찬가지로, 이번 판결에서도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 정도에 대하여 ‘사회통념상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정도면 족하다’고 보았다. 반올림은 이번 산재인정 판결에 환영하며 더 이상 부당한 불승인 처분이 남발되지 않도록 시급히 산재 판정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2. 처분의 경과

 

1) 원고는 85년생으로 2003년 9월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광주사업장(제1사업장)에 입사하여 2014년 5월까지 약 10년 8개월 동안 반도체 조립 생산라인에서 몰드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하였고, 2018년 3월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사내하청업체(제2사업장)에서 약 3년 3개월 동안 반도체 클린룸 제조라인에서 식각(ETCH)공정 등의 오퍼레이터로 근무하였다. 그러던 중 2021년 6월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2) 원고는 36세의 이른 나이에 유방암을 진단받은 점, 별다른 개인적, 유전적 요인이 없었던 점, 18세부터 반도체 생산 업무를 시작해 14년 동안 야간노동을 수반하는 교대근무를 지속하며 과로한 점, 여러 화학물질을 취급하였고 방사선 설비로 검사업무를 해온 점, 특히 반도체 여성노동자들이 유방암 발생이 빈번한 점 등의 이유로 2023. 3. 2.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다.

 

3)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별다른 재해조사도 하지 않은 채,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결과에 근거하여 2023. 12. 28. 요양불승인처분을 하였다. 이와 같은 불승인 처분에 불복하여 원고가 서울행정법원에 요양불승인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결과 만 2년만인 2026. 4. 16. 피고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처분이 잘못되었고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3. 판결의 주요 요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 판단 법리와 헌법상 사회국가원리(헌법 제34조),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한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입법 목적, 유해물질 노출 여부나 그 노출량 등 과거의 작업환경을 근로자가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점, 피고에게는 사업장을 조사하는 등 작업환경의 불명확함을 해소할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7조)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칙과 사회통념의 관점에서 보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될 정도로만 증명되면 족하다고 할 것이다.

 

(인정사실들과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면), 원고가 1,2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복합적‧ 누적적으로 노출된 여러 유해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이 이 사건 상병을 발병 또는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충분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판단된다. 업무상 질병의 인과관계 증명의 정도에 관한 위와 같은 기준에 따르면,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합당하다.

또한 동료 근로자 작성의 진술에 의하면, 원고가 근무할 당시 제1사업장(앰코)은 악취와 분진 발생이 심하였고, 근로자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유해물질로 의심되는 물질들을 취급하였으며, 이오나이저가 일으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작업을 하고, 환기장치의 고장과 경보음의 미작동에도 작업수행을 계속하는 등 작업환경이 다소 비정상적이었으며,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낮은 임금 및 복지 수준, 강도 높은 노동시간 등)에서 오는 상당한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근로를 제공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제1사업장이 근로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할 안전설비 등을 충분히 갖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불합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

 

4. 판결의 의의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비록 미미한 정도라 하더라도 반도체사업장에서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이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2년도 연구결과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공단)는 원고가 수행한 몰드공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유해물질과 노출 정도 등 제1사업장의 작업환경을 파악해보려는 노력을 발달리 기울이지 않은 채 ‘몰드 공정의 작업 내용상 신청상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러한 판단에는 구체적인 논거가 결여되어 있다.」 고 하였다.

 

이번 판결의 의의에 대해 원고대리인 박다혜 변호사는 “법원은 원고가 수행한 노동의 구체적 실태와 함께 관련 연구를 상세하게 검토하고, 근로복지공단은 확인하지 않은 동료 근로자의 진술을 진지하게 검토하며 14년 간의 유해 요인 노출을 확인하였다. 피고(근로복지공단)가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시한 처분 사유는 구체적 논거가 결여되어 있고 추상적 근거만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밝혔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부실 조사와 부실 판정의 문제를 법원에서 확인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5. 법원과 같은 판단기준 법제화, 공단 판정위원회 근본적 개혁 절실

 

원고와 같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부실조사, 판정위원회의 부실판정으로 불승인 처분을 받는 피해자들이 부지기수이다. 지난 3년간(2023~2025년 사이) 반올림에서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노동자의 백혈병, 뇌종양 등 업무상 질병 산재 신청 사건 처분이 나온 16건 중 4건만 승인, 나머지 12건은 모두 불승인되었다. 불승인 된 12건 중 11건은 역학조사가 생략된 채 부당하고 피상적인 이유로 불승인 되었다. 2017년 대법원 판결 영향으로 한동안 올라갔던 승인율이 20%이상 감소한 것이다.

 

치료와 생계의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겪는 산재노동자가 모두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행정소송까지 내몰려야 하는가? 규범적 판단을 받고 싶으면 산재소송을 가라는 식의 근로복지공단의 몰지각한 태도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사회보장제도로서 존재하는 산재보험의 취지를 망각하는 태도이다. 더 이상 아픈 노동자가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소송으로 내몰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의 이러한 문제는 하루이틀의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법원과 같은 ‘규범적’ 판단기준을 법제화하고, 더이상 남용되지 않도록 공단의 부실조사 관행, 업무상질병 판정위원회의 대대적인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6.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반도체 사업장의 문제점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이하 앰코) 노동자들도 직업병 피해가 적지 않다. EMC(에폭시몰딩컴파운드) 등 발암물질을 비롯해 각종 화학물질과 방사선 취급, 교대근무, 과로 스트레스로 인해 백혈병, 뇌종양, 폐암, 유방암, 과로사 등 직업병 피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앰코 회사는 삼성, SK 등 전자 대기업이 자체 운영하는 지원보상제도도 마련한 바가 없다.

 

근로복지공단도 위 황00님의 유방암 산재 신청 과정에서 보여주듯이 제대로 된 재해조사 조차 하지 않았다. 동료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한 여성 오퍼레이터는 EMC 등 분진에 노출되어 일하다가 30대 중반에 진폐증에 걸렸다. 신너와 유기용제도 많이 취급했으나 배기장치는 한참 지나 생겼다. 멜라민(금형세정제) 금형 청소제품인 ‘러버’라는 물질에 노출되어 구역질이 날 정도로 냄새가 심했지만 일반 마스크만 쓰고 일하였다. 환기장치의 고장과 경보음의 미작동에도 작업수행을 계속하는 등 작업환경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점은 판결문에도 명시되었다.

 

또한 유방암과 다른 암에 걸리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과 대책 마련도 회사는 내놓고 있지 않다. 오히려 회사는 유방암 치료후 현장 복귀를 했는데 바로 3교대 근무를 시키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교대근무가 유방암의 발병 원인이자 악화요인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을텐데 노동자의 건강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관리행태인 것이다. 이번 산재인정을 계기로 앰코는 더 이상 외면하고 방치하지 말고,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파악과 합당한 보상, 작업환경개선과 안전한 근무환경 제공 등을 실시하라.

 

7. 피해당사자 심경

 

오랜시간 반도체 현장에서 성실히 일해왔지만 예상치 못한 암 진단을 받으면서 제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공단에서의 불승인이라는 결과를 받고 포기해야할까 하는 고민도 많았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건 신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든 시간과의 싸움일 것을 알기에 더더욱 망설였습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 다시 한번 힘낼 수 있게 도와주신 가족, 그리고 직장동료분들, 반올림 노무사님께서 산재신청을 위해 많은 자료들도 수집해 주시며 힘써주셨고 재판을 잘 진행할 수 있게 오랜 시간 애써주신 박다혜 변호사님 덕분에 좋은결과가 나와 정말 기쁩니다.

 

제 아픔과 노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고, 이번 결과를 통해 비슷한 상황에 놓인 많은 노동자들에게도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누구도 같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도록 작업환경과 제도가 더욱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참고> 판결문 요지 (링크)

https://docs.google.com/document/d/1yegL-tJzoISLOve3kXjfZx27XQNeHsTWDZHymwdL8zA/edit?usp=sharing

 

<첨부> 판결문 (파일)

 https://drive.google.com/file/d/1vuj_8oH5ad6VTUmhxxJI4TH90JkNt_M7/view?usp=sharing


 

* 문의 :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 (010-8799-1302),

* 반올림 전화 (02-3496-5067), 이메일 sharps@hanmail.net, 반올림 홈페이지 http://sharps.or.kr

 

 

 

[참고] 판결문 요지

 

서울행정법원

판결

 

사 건  2024구단57180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원 고  황00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다혜

피 고 근로복지공단

         대표자 이사장 박종길

변론종결 2026. 2. 12.

판결선고 2026. 4. 16.

 

주 문

1. 피고가 2023. 12. 28.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1985년생)는 2003. 9. 16.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주식회사 광주사업장 (이하 제1사업장)에 입사하여 2014. 5. 26.까지 약 10년 8개월 동안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몰드 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하였고, 2018. 3. 27. SK하이닉스 주식회사 청주사업장의 사내하청업체인 SK하이닉스시스템IC 주식회사(이하 제2사업장‘)에 입사하여 2021. 6. 14.까지 약3년 3개월 동안 반도체 클린룸 제조라인에서 식각(ETCH) 공정 등의 오퍼레이터로 근무하였다.

 

나. 원고는 2021. 6. 14. 유방암을 진단받고 2023. 3. 2. 피고에게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다. 피고는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결과에 근거하여 2023. 12. 28. 요양불승인처분을 하였다.

 

2.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원고는 제1,2사업장에서의 근무기간 내내 야간노동을 수반하는 교대근무를 수행하며 지속적으로 과로하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화학물질에도 수시로 노출되었다. 원고는 일반적인 유방암 호발 연령보다 이른 나이인 36세에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았고, 유방암과 관련된 병력이나 유전력 등의 개인적 요인이 별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면,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할 것임에도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히다.

 

나. 인정사실 (내용은 생략. 판결문 참조)

1) 반도체 제조공정

2) 원고의 근무형태, 업무내용 등

가) 제1사업장

나) 제2사업장

3) 동료 근로자의 진술
 4) 원고의 건강상태

5) 반도체 공정에 관한 작업환경 연구결과

6) 의학적 소견

 

다. 판단

 

1)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 제도는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궁극적으로 경제 ‧ 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여 안정적으로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분야에서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작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이른바 ‘직업병’에 대한 경험적‧ 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첨단산업은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빈번히 바뀌고 화학물질 그 자체나 작업방식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 산업재해의 존부와 발생의 원인을 사후적으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사업장이 개별적인 화학물질의 사용에 관한 법령상 기준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화학물질에서 유해한 부산물이 나오고 근로자가 이러한 화학물질 등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어 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데, 이러한 위험을 미리 방지할 정도로 법령상 규제 기준이 마련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첨단 산업 분야의 경우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이나 교육 역시 불충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사회보장제도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함과 동시에 규범적 차원에서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무과실 책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기업 등 사업자의 과실 유무를 묻지 않고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을 하되, 사회 전체가 비용을 분담하도록 한다. 산업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발전하도록 하는 윤활유와 같은 이러한 기능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첨단산업은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힐 수도 있는데, 그러한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은 근로자의 희생을 보상하면서도 첨단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해관계 조정 등의 필요성과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지급 여부에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되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 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 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위에서 보았듯이 첨단산업 분야에서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햅솽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 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율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율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율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율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2017.8.29.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앞서 본 관련 법리와 헌법상 사회국가원리(헌법 제34조), 근로자의 업무상의 지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한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입법 목적, 유해물질 노출 여부나 그 노출량 등 과거의 작업환경을 근로자가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점, 피고에게는 사업장을 조사하는 등 작업환경의 불명확함을 해소할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7조)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칙과 사회통념의 관점에서 보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될 정도로만 증명되면 족하다고 할 것이다.

 

위 인정사실들과 앞서 든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면, 원고가 1,2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복합적‧ 누적적으로 노출된 여러 유해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이 이 사건 상병을 발병 또는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충분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판단된다. 업무상 질병의 인과관계 증명의 정도에 관한 위와 같은 기준에 따르면,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합당하다.

 

가) 이 사건 상병은 그 발병원인이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았고, 이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도 유해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교대근무 등이 이 사건 상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만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2년도 연구결과에 의하면, 반도체 웨이퍼 가공공정에서 아세톤, 벤젠 등의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식각 공정에서는 암모니아, 불산, 염산, 질산, 황산 등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이 작업에 사용되거나 부산물로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칩 조립공정에서도 아세톤, 벤젠 등의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몰드공정에서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농도가 다른 공정에 비해 더욱 높은 수준으로 측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유해물질들은 의학적으로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만한 발암물질로 인정되고 있으나 상당한 정도의 의심을 받고 있는 물질들이다. 제1,2사업장의 유해화학물질의 농도가 작업환경측정 당시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그런 환경에서 약14년간 근무한 것임을 고려하면, 누적된 유해화학물질의 정도가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을 개연성이 존재한다. 특정한 시기에 각 공정, 작업장소마다 일회성으로 측정하는 방식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는 원고의 실제 작업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있어 이러한 개연성을 배제할 정도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원고의 유해화학물질 노출 수준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사고성 노출의 가능성, 즉 작업 당시의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고농도‧ 다량을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여야 한다.

 

나) 원고가 가장 오래 근무한 몰드공정에서는 180℃ 정도의 열로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녹여 칩에 코팅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어 원고는 그 구성성분인 카본블랙, 실리카, 삼산화안티몬 등과 에폭시수지나 페놀수지의 열분히 산물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에 직접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경화(Cure)과정 특히 오분의 문을 여는 작업을 하면서도 휘발성 유기호ᄒᆞᆸ물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고가 제2사업자에서 담당한 식각공정에서도 포토공정에서 사용되었다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웨이퍼와 함께 전달된 감광액 포토레지스트리(PR)성분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휘발성 유기물질 및 각종 부산물과 가스물질 및 각종 부산물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피고는 원고와 유사한 조건인 제1사업장 또는 몰드공정에서 근무하였다가 유방암, 폐암을 진단받은 근로자들에 대하여 업무상재해를 인정해주기도 하였다.

 

3) 나아가 반도체 사업장은 클린룸 설비와 환기시스템의 특성상 인근 공정 간의 공기의 혼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2년도 연구결과에 의하여 뒷받침된다. 이에 따르면, 원고의 경우 몰드 공정, 식각 공정 외에 다른 공정도 담당 하였다는 자신의 주장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다른 공정에서 발생한 여러 유해물질에도 일부 노출되었다는 점만큼은 인정받을 수 있다.

 

라) 원고가 제1사업장에서 주로 몰드 공정에서 근무하기는 하였으나, X-선 검사 공정에서 근무하며 전리방사선에도 상당기간 노출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추론은 ‘오퍼레이터들이 엑스레이 작업을 하는 공간을 수시로 출입하여 검사를 하였는데, 납차폐 앞치마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오는 방사선 노출 수준은 그냥 햇빛에 노출되는 수준이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오러페이터들이 불량 검사 등을 하기 위해서 엑스레이실에 자재를 가져갔고, 2년 정도 엑스레이 작업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엑스레이 작업을 하는 사람을 별도로 두었다’라는 동료 근로자 작성의 진술서 기재 내용을 통하여 가능하다. 위 진술서 기재 내용을 믿게 못하게 할 사실‧증거는 주장‧제출된 바가 없다.

 

마) 또한 위 동료 근로자 작성의 진술에 의하면, 원고가 근무할 당시 제1사업장(앰코)은 악취와 분진 발생이 심하였고, 근로자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유해물질로 의심되는 물질들을 취급하였으며, 이오나이저가 일으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작업을 하고, 환기장치의 고장과 경보음의 미작동에도 작업수행을 계속하는 등 작업환경이 다소 비정상적이었으며,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낮은 임금 및 복지 수준, 강도 높은 노동시간 등)에서 오는 상당한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근로를 제공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제1사업장이 근로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할 안전설비 등을 충분히 갖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불합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

 

바) 주‧야간 교대근무와 과로를 하는 경우 취침시간의 불규칙, 수면 부족, 생활리듬 및 생체리듬의 혼란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그 자체로 질병을 촉발하거나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신체의 면역력을 저하시켜 질병의 발병‧악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원고는 제1, 2사업장 근무기간 동안 대부분 3교대 근무를 하였고, 이른바 잔업이라는 연장근로도 빈번하게 수행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피로가 누적되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다. 국제암연구소가 주‧야간 교대근무와 암 사이에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로 야간 교대제 근무를 인체발암추정물질 그룹으로 분류한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근무기간 중의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고의 면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면역력과 큰 관련성을 갖는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및 진행 촉진에 중요한 인자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함이 타당하다.

 

사) 피고가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시한 처분 사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정당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1) 비록 미미한 정도라 하더라도 반도체사업장에서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이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2년도 연구결과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원고가 수행한 몰드공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유해물질과 노출 정도 등 제1사업장의 작업환경을 파악해보려는 노력을 발달리 기울이지 않은 채 ‘몰드 공정의 작업 내용상 신청상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러한 판단에는 구체적인 논거가 결여되어 있다.

 

(2) 원고는 피고에게 제1사업장에서 엑스레이(방사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몰드 공정과 같은 공간에 엑스레이실이 있다.’, ‘멜라민 한 뒤에 첫 샷은 무조건 엑스레이를 봐야 하므로 최소한 하루에 한번은 엑스레이실에 방문해 엑스레이 검사 담당자에게 검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라고 하며 그 근거도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 그런데 피고는 이러한 진술을 배척할 만한 근거도 갖추지 않은 채 원고가 주로 몰드 공정에서 근무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만연히 ‘방사선에 노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아) 원고는 반도체사업장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 생활습관 등과도 무관하였다. 그 결과 ‘직업적 요인’ 이외에 원고에게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원인으로는 단지 ‘이 사건 상병이 뚜렷한 원인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을 개연성’ 만을 상정할 수 있다(피고도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간의 인과관계를 추성적으로 부인하고 있을 뿐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만한 다른 원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에 대해서는 여러 유해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라는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와의 연관성이 단절되지 않는 점, 원고의 동료 근로자가 한 제1사업장의 작업환경에 괂나 진술, 원고가 대한민국 여성들 사이에서 유방암이 호발하는 연령대(40대 39.8%, 40세 이하 약 15%)보다 이른 만 35세라는 나이에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았던 점, 원고가 제1사업장에서 근무한 이후 그리고 제2사업장에서 근무하던 도중에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아 업무 수행과의 시간적 밀접성도 높은 점, 제1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한 다수의 근로자들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백혈병, 유방암, 폐암 등이 발병하여 투병생활을 하였던 점, 제2사업장에서도 유방암 등의 직업병이 발병한 근로자들에게 지원보상을 한 점 등에 기초하여 살펴보면,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두 가지 개연성, 즉 ‘직업적 요인으로 발생하였을 개연성’과 ‘자연적으로 발생할 개연성’ 가운데 여러 구체적인 근거를 갖춘 전자의 개연성이 추상적인 근거만을 갖춘 후자의 개연성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됨이 합리적이다.

 

자) 더욱이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유해화학물질들과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라는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인에 원고가 복합적으로 노출되고 그것이 근무기간에 비례하여 장기간 이어진 경우에는 각가의 유해요인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유해성이 더욱 증대되었을 가능성도 간과하기 어렵다.

 

차) 이 법원의 감정의는 원고에게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만한 직업적 유해요인과 개인적 요인, 원고의 작업 내용 및 근무기간 등을 두루 고려하여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였다. 감정인이 법원의 촉탁에 따라 전문적인 학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출한 감정 결과는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의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하여야 하고, 감정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가 있거나 그 신빙성을 명백히 탄핵할 수 있을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현출되는 경우에만 이를 배척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라. 소결론

이와 달리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조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