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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요청 및 보도자료 [보도자료] 삼성반도체 고 김치엽 연구원 1주기 3.26. 현장 추모문화제 (발언, 사진 포함)

반올림
2026-03-27
조회수 807

<사후 보도자료>  


수신 : 제 언론사 사회부 

발신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다산인권센터, 경기지역연대모임 

일자 : 2026년 3월 27일 

제목 : 삼성반도체 고 김치엽 연구원 1주기 3.26. 현장 추모문화제 (발언, 사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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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으로 일하다 심한 업무스트레스, 우울증, 수면장애 악화로 2025년 3월 26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 김치엽 님(30세) 1주기 추모제가 3월 26일 오후5시, 그가 다닌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H3 정문 앞에서 열렸습니다. 유가족을 비롯해 반올림, 서울, 경기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 등 60여명이 참여하였고 고인을 그리워하는 친구분들, 또다른 삼성전자 사망노동자 유족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2. 오후5시에 시작된 추모문화제는 다산인권센터 안은정 활동가의 진행으로, 성공회 봉천동 나눔의 집의 김한승 신부님의 추도사, 고인의 친구 김선민, 윤혜린(대독) 편지 낭독,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돌연사(2023년 8월, CVD엔지니어) 고 정00님의 어머님 발언,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장애인노동자 고 권시범(직장내 괴롭힘, 고과차별 피해자) 누나의 편지글 낭독(대독), 고 이한빛 PD 어머니 김혜영 님의 연대 발언,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김도원 부본부장 연대발언, 416 합창단원 임재옥 님과 민중가수 박준님의 추모노래, 마지막으로 다같이 추모 헌화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참고)  추모제 진행순서 https://docs.google.com/document/d/17MDPrJI8yCWWYRs3QvRFo_SnGMxUmNSDJW_VIchlEbA/edit?usp=sharing

* 스튜디오알 유튜브 생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XXGLBk7s2io&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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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편 고인이 생전에 다닌 고려대학교 캠퍼스에서도 학우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추모분향소가 설치되었고, 26일 오전11시 학내 추모제가 진행되었습니다.


 (*관련 사후보도자료 https://drive.google.com/file/d/1YKuAEgweK_K_43D1m5nQW_S29HKce2Jk/view?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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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성은 고 김치엽 연구원의 죽음을 가리고, 철저히 개인 문제화 하고 있으나 이는 아파도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기업조직, 삼성의 성과주의가 가져온 비극입니다. 또한 고인의 추모제에서 또다른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도 드러났습니다. (2023. 8월 고 정00님의 돌연사, 2024년 2월 장애인으로 마이너스 고과를 받고 괴롭힘을 당하던 고 권시범 님의 죽음), 이에 대하여도 추후 진상규명이 필요합니다.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삼성의 책임인정,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될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4월에는 근로복지공단에 고 김치엽님의 죽음에 대한 산재신청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보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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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추모제 발언 모음


* 친구 윤혜린 발언  (대독: 반올림 자원활동가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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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 치엽이에게. 우리는 14살부터 친구였고, 나는 지금 32살이야. 내 생은 너를 모르는 날보다 네가 있는 날이 더 많았는데. 앞으로의 내 인생은 네가 없는 날이 계속 되겠지, 분명히. 우리가 고작 중학생일 때 내가 멀리서 놀러왔다고 비싼 가게에서 밥 사줬던 거 기억 나니. 나는 너에게 계속 빚만 졌었잖아. 내가 취업하면 꼭 하고 싶었던게 네가 계속 사준 밥, 내가 다시 사주는거였다고 말했잖아. 최근에 네가 나보고 ‘내 결혼식 사진 찍어달라’고 했었던 거 기억나니.

왜 너랑 한 모든 약속을 지키지 못해야하는지, 왜 네가 가야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 취업하고 이제 네게 빚 갚을 수 있다고 정말 행복하게 얘기했는데, 그걸 부조금으로 갚게 하니. 공부한다고 빼지말고 너 한번 만나러갈 걸 그랬다, 파트장님이 불러서 주말 출근한다고 할때 조금만 더 신경쓸 걸 그랬다. 주위 사람들이 내게 ‘너무 힘들어하지마, 죄책감 가지지 마‘라고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정말 어쩔 수가 없어.

세상에는 노동자의 부당한 죽음이 많아서, 네 죽음조차 내게 무뎌질까 두렵다. 내 생에 다시는 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미친듯이 괴롭혀.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영영 답이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DM으로 메세지를 보내.
나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네 죽음을 직면할 때마다 내 영혼이 찢어지고, 내 모든 인생이 무너져 내리고, 내 모든 게 부정 당하는 것 같다. 그래도 너는 네 친구들이 행복하기를 바랬으니까, 꿋꿋하게 살아가 볼게. 다음 생에서는 우리 아주 많이 행복하자. 그 떄도 나의 가장 오랜 친구가 되어주라. 사랑한다, 보고 싶다. 너의 영원한 편, 혜린이가.


* 친구 김선민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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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엽이형. 오랜만이다. 이렇게 인사하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형 졸업하고도 술 한잔 하재놓고, 취직하고도 술 한잔 하자 놓고 이제서야 인사를 하게 됐다. 미안해. 

작년 초였던가, 우리게임장에서 만났던 형은 별 다른 말 없이 많이 바쁘고 힘들다고 했던 것 같아. 그 이후로 형 소식이 끊겼더라. 그렇게 못본지 벌써 1년이 됐다. 게임이고 뭐고 그때라도 같이 술 한잔 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들어야했는데 이제와서 후회가 많이 되는 것 같아.

사실, 형 소식을 올해가 되어서야 듣게 됐어.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는데, 더 이상 형 소식을 들을 수 없다는게 별로 안믿겨서 며칠동안 밤마다 울었다. 주말에 오락실에 가면 당연하다는듯이 형이 건물 앞에서 담배피고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우리게임장도 다녀와봤어. 왜인지 모르겠는데 형이 없더라. 이상한 것 같아.

 나한텐 아직 주말에 오락실 가면 있어야하는 사람인데. 내가 게임하는거 볼때마다 우리 선민이 많이 늘었다고, 이제 자기랑 같이 게임해도 되겠다고 하던게 엊그제같은데,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없다. 

난 며칠전에 회사를 그만뒀어.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출근 준비하는데 몸이 덜덜 떨리더라고. 죽지못해 회사를 가던 출근길에 형이 생각나더라. 그래서 그만뒀어. 

지금은 좀 편해? 뭐 해오라고 갈구는 사람은 없지? 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대신 이야기해줄게. 누군가에겐 직장 생활이 죽을만큼 힘들수도 있다고, 그런 직장생활이 있어선 안된다고. 난 조금만 더 버티다가 때가 되면 보러갈게. 

일하다 죽는 대신 형 몫까지 실컷 놀다가 죽을거다. 내가 아직 형 나이까지도 한참 남았다. 게임으로 김치엽은 이겨먹고 가련다. 그때까지 푹 쉬어. 사랑해. - 동생 선민이가


* 고 김치엽 아버지 김영구 님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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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아들은 삼성전자 취업통지에 기뻐했고 우리 가족은 아들의 그동안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은 2025년 3월 26일 아들은 주검으로 이곳에서 부모를 맞이했습니다. 너무나 허망하게 아들을 떠나 보냈지만 아직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이곳에 오면서 작년 왔던 때가 떠오릅니다. 

차를 몰고 오면서 몇 번이나 갓길에 차를 세워가며 감정을 추스려도 운전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 졌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오늘 다시 오면서 지난 1년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 다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생각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아직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해 사과도 없습니다. 

아들 죽음에 대한 최초의 목격자였던 삼성전자가 아들의 죽음에 보인 태도는 처음부터 한 가지 였습니다.이 죽음은 회사의 책임이 아니고 개인의 병력 문제로 만들려 했습니다. 모든 초점을 개인에게 돌리고, 유족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에 침묵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확인했던 진실은 이 죽음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들 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죽음의 진실을 요구하는 가족이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고민해주고, 함께 분노해주고, 함께 싸워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삼성전자 노조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연락처 조차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아직 이 거대한 조직 안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싸움은 여전히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행히도 거의 20년 가까이 삼성과 싸워온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지킴이’ 단체인 “반올림”이 이 문제에 연대해 주었습니다. 그 연대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라는 기업은 너무나 권력화되어 이제는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고 황유미 님의 백혈명 사망 이후 고 김치엽 자살사건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죽음이 23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2025년 3월 26일 제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현재까지 5분의 사망사건이 제보됐다고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외부의 고발과 사회적 압력, 그리고 연대의 힘이 쌓여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삼성전자는 최소한으로 반응하였습니다. 제 아들 고 김치엽의 자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또 하나 똑똑히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삼성의 왜곡된 진술 속에서 경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유족의 요구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못해 보내온 2번의 답변서는 같은 내용에도 답변이 서로 상충되고 있습니다. 아들이 거주하던 오피스텔은 입구에 비밀번호를 눌러야 출입이 가능한데도 삼성전자는 4차례이상 주거침입을 시인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아들의 근태문제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회사의 인사권은 개인의 사생활을 침입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봐도 삼성전자의 인권감수성이 얼마나 반인권적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개인의 사생활 공간을 침범할 정도로 우월적인 권리를 대한민국 헌법과 ILO는 삼성전자에 준 사실이 없습니다. 

이런 오만적인 태도와 폭력적인 인사관행, 살인적인 경쟁으로 내모는 고과제도는 바로 유가족이 지적하는 삼성의 구조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점의 일부 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삼성의 목적은 단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에 회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만, 그것으로 사측의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관행을 감추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관계와 드러난 수많은 모순은 오히려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회사가 얼마나 깊이 개입되어 있었는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습니다.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조직의 문제이고, 구조의 문제이며, 책임의 문제입니다. 

삼성은 더 이상 침묵과 은폐로 이 문제를 덮으려 하지 마십시오. 진실을 말하십시오. 그리고 책임을 인정하십시오. 그것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저는 아버지로서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이 남은 삶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추모제에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 제 아들의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고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김도원 부본부장의 연대발언


언제까지 우리는 추모를 해야하는지, 언제까지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쳐야 하는지, 이 참담한 현실이 정말 분노스럽습니다. 아프지 않고 일하고 싶다,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프면 쉴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죽어야 건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성과주의, 일류주의 그 뒷편에서 몸과 정신을 갈아넣고 쓰러져가는 노동자들….. 오늘은 김치엽 님의 일이지만 내일은 이 공장 누군가의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법조문에만 있는 단어로서의 건강권이 아니라 내가, 내 동료가, 모든 노동자가 하루 하루 살아가는 생활속에 글자 그대로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동자의 건강권에는 단지 노동자의 힘듦 만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힘듦, 괴롭힘, 성과주의, 일류주의를 앞세운 영혼을 갈아넣는 업무적 환경들 다 고쳐야하지 않겠습니까. 

동지들도 잘 아시겠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느 기업인들 다르겠습니까만 노무관리의 악랄함으로 말한다면 삼성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기업입니다. 죽을만큼 아파도 마음편히 쉬지 못하는 기업이 삼성이지 않습니까. 내일은 또 누가 일하다 쓰러져 갈지, 또 누가 회사의 이윤을 위하여 쓰러져갈지모르는 이 기막힌 현실을 바꾸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노동자의 건강권이 저 먼 행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시간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을 반드시 무릎 꿇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번다시 고 김치엽 님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을 반드시 무릎 꿇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올림과 고 황유미 님의 아버님께서 그렇게 했듯이 오늘 다시 그 싸움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섰습니다. 

이 길에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도 동지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엔지니어 고 정00 님(2023.8월 사망노동자)의 어머님 발언 

24c4c15e9915a.png 안녕하세요.

저는 2023년 8월24일 갑자기 서른세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 아들의 어머니입니다. 

제 아들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파운드리 CMP 공정 엔지니어로 6년 동안 교대근무를 하며 일했습니다. 

회사에서 맡은 일을 아주 성실하게 하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삼성에서 일하고 계신 직원 여러분께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른세 살, 너무 젊은 나이였습니다. 사망 원인은 “기타 불상 및 미상”이라고 합니다. 왜 제 아들이 세상을 떠닜는지, 아직 아무도 명확하게 말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동료였던 한 젊은 엔지니어가 교대근무를 하며 일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이 일이 그냥 지나가도 되는 일입니까. 

저는 삼성 직원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제 아들의 일을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여러분도 같은 공장에서 같은 교대근무를 하며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제아들의 이야기지만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거창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아들이 왜 세상을 떠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제 아들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하지만 제 아들의 억울함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이 함께 관심을 가져 주시고 같이 목소리를 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하늘로 먼저 떠나보낸 동생 권시범 님을 애도하며2a43461609846.png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사망자 고 권시범 님의 누나 분이 편지를 썼고, 서울예대 학생 김지현 님이 대독함) 

 ‘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 더 이상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누나로써 몇 자 적어봅니다. 

저의 동생의 마지막 순간을 ...... 저는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삶을 마감할 것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이제 50이라는 나이에 생일도 맞이하지 못한 채, 동생은 2024년 2월 23일 싸늘한 주검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동생 생일이 음력 4월 9일로 부처님 탄생 다음 날입니다. 저는 출가한 스님인지라 1년 중에 가장 바쁜 날이라서, 성인이 되어서는 동생 생일을 단 한 번도 축하해주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동생이 곁에 없으니 너무나 후회가 되고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동생은 왼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지체장애인입니다. 하지만 저는 동생을 ‘장애인’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밝고 친구가 많아 가족들도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IMF 때에 아버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가족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시범이도 고생을 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남들보다 배나 사회생활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삼성’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에서 ‘장애인’을 사원으로 채용할 때였습니다. 30이 넘은 늦은 나이에 들어가면서 ‘시범이가 더 이상 고생은 안하겠지’ 하고 가족 모두 축하해 줬습니다. ‘대기업’이라 사원들에 대한 기본적인 복지와 배려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시범이도 그때가 참 행복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저희의 생각과 ‘삼성’이라는 기업은 너무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코로나가 범람할 때 시범이는 회사에서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본인보다 나이 어린 상사가 시범이를 호출하여 공개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업무적인 지적을 하는 사건이 빈번히 벌어졌습니다. 한 두 번은 상사가 화가 나서 그러려니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회사 내 ‘왕따’나 ‘괴롭힘’ 수준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시범이가 ‘알콜 의존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괴롭고 견디기 힘들었으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을까요. 시범이는 어려서 장애로 주변의 놀림을 받아도 가족들에게 말을 한 적이 없는 속이 깊은 아이였어요.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아 가족들은 한참 시간이 지나, 건강이 악화된 후에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견디려다 보니 계속 술에 의지했나 봅니다. 

그때 회사를 그만 두었더라면 동생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때늦은 후회가 됩니다. 우울증에 ‘간경화까지 겪으며 건강악화로 1년 무급휴가를 받아 쉬고 있던 중, 건강이 호전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다시 회사에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회사를 그만두라고 압박하면서 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이지 어떻게 3년이나 일이 없는 상태에서 회사를 다녔는지 저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또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있는데 삼성 ‘인사과’에서 연락이 와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삼성에만 있는 ‘고과제도’ 때문에 시범이는 마이너스 고과를 받아 임금도 동결되고 보너스도 지급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힘들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어 이때 ‘노조’에도 가입했나 봅니다. 일을 주지 않는데 회사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마이너스 고과제도는 사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어 삼성 내에서도 금지하기로 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아파서 치료중인 사람에게 마이너스 고과를 주어 정신적으로 크나큰 고통을 주는 걸까요? 

시범이가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다쳐서 검지 손가락도 한마디가 없습니다. 그래서 회사원들이 누구나 하는 컴퓨터를 잘 하지 못합니다. 남들보다 업무속도가 느리겠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베트남(삼성전자 공장)에서도 열심히 해서 베트남에 남아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했던지 손목터널증후군까지 앓게 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상사들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은 안 해주고 자신들의 승진만 생각했습니다. 매번 평가에서 안 좋은 ‘고과’를 받아 승진에서 밀려 시범이는 말단 직원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애를 가진 많은 회사 동료들이 치열한 경쟁에 밀려 삼성을 그만 두어서 지금은 소수만 남았다고 하더군요. 

시범이가 몇 번씩 탄식하면서 되 뇌이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본인이 나이가 두 번째로 많은데 직급은 낮다고요. 자존감이 얼마나 무너졌을지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시범이는 삼성 ‘인사과’로 몇 번이나 불려갔습니다. 너무나 적은 금액을 제시하면서 명퇴를 강요하고 정신적으로 압박을 주었습니다. 

시범이의 건강이 많이 악화되고 회사 문제를 알게 된 뒤로, 어머니와 제가 동생을 돌봤지만 아무 힘도 없고 뒷배경도 없는 장애를 가진 사원이 겪는 고통을 대신 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시범이가 혼자서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나중에는 마이너스 고과로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혈토, 혈변을 하더니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로 어머니가 참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삼성에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마이너스 고과’제도가 없어지고, 정당하게 대우받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모든 노동자들이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없기를, 고통 받지 않기를, 헛된 죽음을 맞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조화롭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모든 분들이 함께 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끝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일하시는 모든 노동자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현장에서 일하다가 삶을 먼저 마감한 노동자분들에게 마음 깊이 애도를 표합니다. 

병오년 3.25. 동생을 그리며 밤에 씁니다. 

선적합장()()    


* 고 이한빛 PD 엄마 김혜영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님의 고 김치엽 1주기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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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열악한 방송노동환경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에 절망해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고 고발하고 떠난,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고 이한빛PD 엄마 김혜영입니다. 

먼저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반올림을 통해 삼성반도체 신입연구원 30세 김치엽님의 죽음을 처음 알고 며칠동안 가슴이 미어져 고통스러웠습니다. 10년 전에 떠난 27살의 아들 한빛PD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들은 왜 이렇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건가요? 왜 이렇게 사람보다 성과주의가 더 중요한 건가요? 왜 이렇게 기업의 이윤이 생명보다 우선인 건가요? 

꿈많은 한 청년이 극심한 압박과 고민으로 죽었는데 왜 이렇게 책임지지 않는 건가요? 노동자들의 심각한 건강실태를 이미 다 아는데 회사는 왜 이렇게 방치하는 건가요? 19년 전 황유미부터 끝없이 죽음이 이어지는데 왜 이렇게 반성이나 개선이 없는 건가요? 

아파도 일을 멈출 수 없어 결국 죽어야만 쉴 수 있는 삼성, 사람이 죽어도 침묵하다가 진상을 규명하려고 하자 회사에서 겪었던 업무상 압박과 고통은 철저히 감춘 채 그의 죽음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폄하한 삼성.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이 나라 경제를 이끌어가는 반도체산업이라고 교묘하게 허울 씌워 국민들을 기만하는 삼성. 한 청년의 죽음이 그들이 말하듯 개인의 문제이고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죽음은 명백한 타살입니다. 

무너져가는 그를 숨 쉴 수 없게 재촉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삼성의 시스템입니다. 

그는 ‘행복해지기’가 새해 소망이었고 업무 잘하고 건강관리 잘 하자고 자신에게 약속했던 밝은 삶의 의지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이 땅의 청년은 노력하는 만큼 행복할 수는 없는 건가요? 삶을 포기할 만큼 몰아붙이는 노동환경을 당연시하는 당신들의 교만의 끝은 대체 어디인가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삼성전자는 서 있는 건가요? 당신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고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고 자랑하지만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비했습니다. 성과와 실적 아래 한 젊은이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았고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살아가던 한 가족을 처절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지난 1년. 가족들은 어떻게 버티고 견디어냈을까요?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고 싶은 간절함,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아들의 삼성전자 선택을 응원했던 것에 대한 후회, 그날 이후 멈춘 시간은 삶의 의미도 빼앗아가고 희망이나 행복이란 단어도 삭제된 채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가족들은 이 사회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빛한테도 그랬듯자살이란 단어에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려는 삼성전자라는 괴물에 답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삼성전자는 답을 해야 합니다. 10년 전. 거대한 벽앞에서 죽은 아들을 위해 절규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제가 김치엽님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한빛한테 수없이 했던 말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또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김치엽님의 죽음이 안고 있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치열하게 고민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은 또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절망속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같은 죽음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겠지만 가족들에게 힘들지만 끝까지 싸워나가자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이 들어 기운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들 김치엽만 붙잡고 아들 김치엽만 바라보고 끝까지 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10년 전 한없이 작고 초라했던 우리가 연대의 손길로 힘을 얻었듯이 많은 진실의 힘들이 함께 해 줄 것입니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도 아들 죽음의 진상규명과 가족들의 피해자 권리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죽음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작가 한강이 말했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청년 노동자 김치엽님과 한빛이 살고자 했던 남은 시간들을 이제 살아 남은 우리들이 대신 살아가기 위해 함께 하고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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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정택용 사진작가님이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출처를 밝히시고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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