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 알림 [2019.03.04]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14명 집단 산재신청 기자회견
<사진이나 글을 누르시면 기자회견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어느 날 갑자기 건강하던 서른 살 아들에게 백혈병이 찾아왔습니다. 아들의 백혈병 진단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겐 자식이 단 하나 뿐입니다. 운동을 좋아해 주말에는 축구를 즐기던 아들입니다. 그날도 하나 뿐인 우리 아들은 공을 차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몸에 열이 나길래 단순한 감기일거라 생각했는데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땅이 꺼지는 듯하고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참담한 순간이었습니다.왜 그냥 흔한 병이 아니라 백혈병이라는 희귀병이 우리 아들에게 찾아왔을까를 천번만번 생각해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본가도 외가도 모두 건강하기에 아들의 백혈병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저 별일 없기만을 바라며, 다 나아서 건강해지기만을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백혈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도, 기초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의사선생님을 믿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아들은 암 수치를 떨어트리기 위해 무균실에 입원했습니다. 항암을 하는 동안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너무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오장육부의 장기를 다 떼어주고서라도 자식이 빨리 나아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의 심정일 것입니다. 저희 부부도 그러한 심정으로 아들에게 골수를 이식해 주었습니다.골수이식 후 경과가 좋아서 아들과 우리 부부는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완치되리라는 굳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병은 재발하였고 아들은 또 다시 암과의 사투를 벌이며 무균실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진단을 받고 1년 동안 고통스럽게 치료해왔지만 폐렴이 합병증으로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작년 10월, 하나뿐인 우리 아들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어느 부모나 다 똑 같겠지만 30년 동안 아플세라 다칠세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렇게 다 키워놓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을 평생 품고 살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너무나 건강했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병이 온 다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단지 단 하나, 반도체 산업과 희귀병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들이 일하러 나갔던 장소가 반도체 공장이었단 사실에 마음이 아렸습니다. 아이가 일을 하다 죽은 것은 너무 슬프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왜 우리아이에게 그런 병이 걸렸는지 납득하고 싶습니다.
<사진이나 글을 누르시면 기자회견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건강하던 서른 살 아들에게 백혈병이 찾아왔습니다. 아들의 백혈병 진단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겐 자식이 단 하나 뿐입니다. 운동을 좋아해 주말에는 축구를 즐기던 아들입니다. 그날도 하나 뿐인 우리 아들은 공을 차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몸에 열이 나길래 단순한 감기일거라 생각했는데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땅이 꺼지는 듯하고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참담한 순간이었습니다.
왜 그냥 흔한 병이 아니라 백혈병이라는 희귀병이 우리 아들에게 찾아왔을까를 천번만번 생각해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본가도 외가도 모두 건강하기에 아들의 백혈병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저 별일 없기만을 바라며, 다 나아서 건강해지기만을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백혈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도, 기초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의사선생님을 믿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암 수치를 떨어트리기 위해 무균실에 입원했습니다. 항암을 하는 동안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너무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오장육부의 장기를 다 떼어주고서라도 자식이 빨리 나아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의 심정일 것입니다. 저희 부부도 그러한 심정으로 아들에게 골수를 이식해 주었습니다.
골수이식 후 경과가 좋아서 아들과 우리 부부는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완치되리라는 굳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병은 재발하였고 아들은 또 다시 암과의 사투를 벌이며 무균실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진단을 받고 1년 동안 고통스럽게 치료해왔지만 폐렴이 합병증으로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작년 10월, 하나뿐인 우리 아들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어느 부모나 다 똑 같겠지만 30년 동안 아플세라 다칠세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렇게 다 키워놓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을 평생 품고 살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건강했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병이 온 다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단지 단 하나, 반도체 산업과 희귀병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들이 일하러 나갔던 장소가 반도체 공장이었단 사실에 마음이 아렸습니다. 아이가 일을 하다 죽은 것은 너무 슬프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왜 우리아이에게 그런 병이 걸렸는지 납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