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미사"
일시 : 1월 24일(목) 오후 5시
장소 : 삼성 본관 앞 (강남역 8번 출구)
반올림도 함께합니다~
아래 글은 2010년 '기쁨과 희망' 사목지에 기고했던 @김정대 신부님 글 입니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노동자
삼성전자는 최근 어마어마한 영업 실적을 기록했다. 일개 기업의 영업실적에 대해서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한다. 아마도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내면화가 작용했으리라.
지난 4월 17일 토요일 오후부터 서울 가산디지탈역 주변의 어느 맥주집에서 일일주점이 열렸다. 얼마 전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박지연씨를 비롯한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백혈병을 비롯한 악성 종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세상에 알리고 다양한 연대를 결성하기 위한 연대주점이었다. 연대주점을 알리는 포스터에는 “2007년 10월 9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10년 3월 첫 주, 반도체산업산재사망 노동자 추모기간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4월 17일, 동지들과 함께 하는 연대주점을 통해 더 멀리, 더 높이 달려가기 위한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살짝 무거운 지갑과 두툼한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함께 해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도대체 첨단산업과 깨끗한 작업환경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에 무슨 일이 벌이지고 있는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백혈병에 의한 의문의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수도생활을 시작하기 전 약 2년간 반도체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를 했던 나는 22년 전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2005년 7월 삼성전자 기흥공장 1라인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일했던 황민웅씨가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으로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6년 8월에는 3라인에서 세척업무를 맡았던 이숙영씨가 같은 병으로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3월, 고 이숙영씨와 2인 1조로 함께 일했던 황유미씨가 23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2009년 11월에는 2라인과 3라인에서 식각 업무를 맡았던 김경미씨가 29살의 일기로 숨졌다. 그리고 삼성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씨가 2010년 3월 31일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박지연씨의 죽음은 인터넷과 주요 언론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박지연씨의 죽음으로 형성된 반도체 산업의 산업재해에 관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반도체 공장의 일부 라인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사람들은 깨끗한 작업환경에 경탄하며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깨끗하다는 작업환경은 절대로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이 아니라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업 공정에 따라 많은 화학약품을 사용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디서 어떤 약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르고 주마간산 식으로 공장을 견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비롯한 악성 종양과 같은 암으로 사망한 삼성전자 노동자들에 대해 여전히 노동환경과 무관한 죽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세상에 알려기 시작한 것은 2007년 3월 6일 황유미씨의 죽음 이후이다. 그는 2003년 10월 강원도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몇 달 전에 동기생 10여명과 함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그리고 입사한 지 불과 2년이 채 안 된 2005년 5월경부터 몸에 멍이 자주 들고 먹은 음식을 토하고 피로와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병원에서 확인한 결과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한 그는 결국 2006년 10월경 강제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듬해 3월에 세상을 떠났다. 회사는 황유미씨 가족의 산업재해 처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황유미씨와 같은 라인에서 2인 1조로 일을 하던 동료가 임신했다 유산이 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 자리에 새로 배치된 이숙영씨가 2006년 8월에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의 주장에 의하면 2인 1조로 일하는 현장에서 함께 일한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백혈병이라는 희귀병으로 상망했다는 것은 작업도중 발암물질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숙영씨의 예는 좀 더 객관적인 정황증거를 보여준다. 그는 13년간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동안 갖은 질병에 시달렸다. 1997년 6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그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서 기록에 의하면 그는 무려 118건에 걸쳐 병원을 찾은 것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2000년 12월에는 유산을 했으며 각종 접촉성 피부질환과 호흡기질환에 시달리며 결국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야 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보고의 예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집단 직업병 발병은 1988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이다. 인견사는 펄프에서 실을 뽑는 과정에서 대량의 이황화탄소 등 화공약품이 투입된다. 이 이황화탄소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신경독가스의 원료로 쓴 치명적인 유해물질로 일시 대량흡입 시 질식사하고 장기간 흡입 시 뇌신경을 마비시킨다. 당시 방사과에서 장기 근무했던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인해 팔다리마비와 언어장애, 기억력 감퇴, 정신이상 그리고 성 불능 및 콩팥기능장애로 고생하고 있었다. 노동부는 1988년 8월 3일 원진레이온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인체에 해로운 이황화탄소가 허용기준치(10ppm)의 2.6배, 유화수소는 1.3배가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이황화탄소 중독증은 계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노동자들은 1개월간 요양치료를 받고 산재등급에 따라 장애보상금을 받았다. 이후 이들 중 4명이 병세가 악화되어 재요양신청을 냈지만 노동부는 이들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해 장애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법적, 행정적 조치가 종결된 상태라며 재요양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는 당시 문송면군(당시 15세)의 수은중독으로 인한 사망사건과 더불어 우리사회가 직업병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원진레이온 직업병에 대한 노동부의 대응은 처음부터 실망 그 자체였다. 사실 노동부는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환자에 대한 사직강요 등 불법노동행위와 유해 작업환경을 눈감아 주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언론(한겨레신문 1988년 7월 22일자)을 통해서 사회에 알려지면서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가 사회문제로 번지게 되었다. 또 1987년 6월 민주화항쟁과 7-9월의 노동자대투쟁을 통한 노동조합의 성장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직업병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직업병에 대해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축소시키는 현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대책 없이 직업병에 노출될 것이다. 더욱이 시대에 역행하며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에서 직업병 문제는 쉽게 사회에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외국의 전자산업 및 반도체산업의 산업재해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2003년에 조사한 노동자들의 화학물질 중독으로 인한 사고 통계에 의하면 노동자 1만 명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는 0.3명, 제조업 노동자는 0.5명, 전자산업 노동자는 3명, 반도체산업 노동자의 경우는 6명으로 나타났다. 산업재해 피해는 단지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1982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실리콘밸리 지역의 상수원인 지하수 오염으로 피해를 당해서 오염 원인 제공자인 페어차일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984년 발표된 오염실태조사 보고에 따르면 그곳 대부분의 토양과 지하수가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에 오염되었고, 농도는 허용기춘치의 30배가 넘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IBM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자신들에게 발병한 암이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비롯되었다며 2003년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이 예방의학자 클랩 박사에게 조사를 의뢰한 결과 제조 과정에서 사용하는 용매나 발음물질이 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IBM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사망 자료를 분석해 IBM의 암 발병률이 전국 평균보다 상당히 높으며, 뇌암은 4배, 다발골수종은 6배, 유방암은 2배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또 2001년 영국 보건안전위원회(HSE)의 보고서에 의하면 영국의 내셔널반도체의 그리녹 공장 노동자의 암 발병률을 보면 여성은 페암, 위암, 유방암의 발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2-5배가량 높게 나타났고, 남성은 뇌암 발병률이 4배 높게 나왔다. (박일환, 반올림 공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40-44쪽 참고)
대책위원회와 ‘반올림’의 활동
2007년 3월 황유미씨의 억울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되어 그해 11월에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대책위는 온라인 활동을 병행하기로 하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라는 카페를 개설하였다. ‘반올림(#)’은 영문으로 ‘SHARPS’로 표기하며 각각 의미를 담은 영문의 앞 철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Solidarity(연대)의 S는 반도체 자본과 맞서 싸우는 이들과의 연대, Help(상담)의 H는 피해 담당과 법적 대응 지원, Action(행동)의 A는 노동권, 건강권 확보를 위한 직접 행동을 나타낸다. 또한 Research(연구)의 R은 반도체산업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연구, Propaganda(선전)의 P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선전과 홍보를 뜻한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병을 얻은 사람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대책위는 우선 피해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11월 당시까지 밝혀진 백혈병 발병자는 6명이었고 그중 5명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조사와 제보를 통해서 그 피해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책위는 피해사례를 모아 언론에 알리고 피해자들과 협의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반도체 사업장마다 안전 방지책을 세우도록 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대책위의 이런 활동으로 인해서 노동부는 2008년 1월 31일 ‘반도체 제조업체 근로자 건강실태’ 일제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부는 대책위의 조사 참여 요구를 거부하고 조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를 거부한 이유를 기업의 영업상의 정보와 생산기술이 포함되어 당사자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몇 명인지와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목록이라도 공개해 달라는 대책위의 요구도 거부하였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눈치를 보는 이중적인 행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피해자와 ‘반올림’은 산업재해 승인 여부를 위하여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유해물질이 어떻게 질병과 관련이 있는지를 증명하기는 어떤 경우에는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과 정부가 유해물질이 백혈병과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에 맞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신속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은 백혈병이나 악성 종양의 집단 발병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못하다.
앞으로의 전망
2009년 5월 15일 황유미씨를 비롯한 5명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에 대해서 전원 불승인 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심사청구를 제기했지만 지금까지 다른 사건의 경우에도 심사청구를 받아들인 경우가 거의 없어 산업재해 승인을 장담하기 어렵다. 남은 것은 행정소송 등의 절차가 있지만 그 역시 오랜 기간이 걸리고 법원이 선뜻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판단을 할지 의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 발병과 관련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노동조합의 결성이다. 원진레이온의 집단 산업재해가 인정된 것은 무엇보다도 1987년 6월 민주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인한 노동조합의 성장이 큰 힘이 되었다.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에서 노동자들이 권리주장은 불가능하다. 사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삼성에 노동조합만 있었어도 자신의 딸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거라고 아쉬워하였다. 둘째, 노동부를 비롯한 근로복지공단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켜내기 위해서 환골탈태하여야 한다. 이로서 너무 엄격한 산업재해 적용기준을 완화하여 노동자들을 지원해야 하며 예방차원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직업성 암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히 교육하고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 셋째, 노동 관련 기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이런 활동과 더불어 사회적으로는 사전 예방 제도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유해물질 목록과 허용기준치를 정확히 명시해야 한다. 한 예로 재개발 과정에서 건물을 해체할 때 발생하는 석명피해의 경우 우선적으로 건설 노동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그리고 공사현장 주변의 사람들에게 호흡기를 통해서 피해를 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기준 명시를 통해서 시민과 사회단체 그리고 관련 관청의 감시가 이루어 져야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기업이 단지 이윤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은 옛말에 불과하다.
기업은 사회적으로 공익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은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태도는 그 기업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기업이미지를 확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삼성이 소비자와 한국 사회에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삼성 노동자들에게 좋은 기업이 아니다. 삼성이 좋은 기업이 되려면 당장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할 때 비로소 좋은 기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김정대 신부, 기쁨과 희망, 동숭동 칼럼, 2010년 제5호.더 보기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미사"
일시 : 1월 24일(목) 오후 5시
장소 : 삼성 본관 앞 (강남역 8번 출구)
반올림도 함께합니다~
아래 글은 2010년 '기쁨과 희망' 사목지에 기고했던 @김정대 신부님 글 입니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노동자
삼성전자는 최근 어마어마한 영업 실적을 기록했다. 일개 기업의 영업실적에 대해서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한다. 아마도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내면화가 작용했으리라.
지난 4월 17일 토요일 오후부터 서울 가산디지탈역 주변의 어느 맥주집에서 일일주점이 열렸다. 얼마 전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박지연씨를 비롯한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백혈병을 비롯한 악성 종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세상에 알리고 다양한 연대를 결성하기 위한 연대주점이었다. 연대주점을 알리는 포스터에는 “2007년 10월 9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10년 3월 첫 주, 반도체산업산재사망 노동자 추모기간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4월 17일, 동지들과 함께 하는 연대주점을 통해 더 멀리, 더 높이 달려가기 위한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살짝 무거운 지갑과 두툼한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함께 해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도대체 첨단산업과 깨끗한 작업환경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에 무슨 일이 벌이지고 있는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백혈병에 의한 의문의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수도생활을 시작하기 전 약 2년간 반도체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를 했던 나는 22년 전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2005년 7월 삼성전자 기흥공장 1라인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일했던 황민웅씨가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으로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6년 8월에는 3라인에서 세척업무를 맡았던 이숙영씨가 같은 병으로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3월, 고 이숙영씨와 2인 1조로 함께 일했던 황유미씨가 23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2009년 11월에는 2라인과 3라인에서 식각 업무를 맡았던 김경미씨가 29살의 일기로 숨졌다. 그리고 삼성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씨가 2010년 3월 31일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박지연씨의 죽음은 인터넷과 주요 언론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박지연씨의 죽음으로 형성된 반도체 산업의 산업재해에 관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반도체 공장의 일부 라인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사람들은 깨끗한 작업환경에 경탄하며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깨끗하다는 작업환경은 절대로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이 아니라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업 공정에 따라 많은 화학약품을 사용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디서 어떤 약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르고 주마간산 식으로 공장을 견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비롯한 악성 종양과 같은 암으로 사망한 삼성전자 노동자들에 대해 여전히 노동환경과 무관한 죽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세상에 알려기 시작한 것은 2007년 3월 6일 황유미씨의 죽음 이후이다. 그는 2003년 10월 강원도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몇 달 전에 동기생 10여명과 함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그리고 입사한 지 불과 2년이 채 안 된 2005년 5월경부터 몸에 멍이 자주 들고 먹은 음식을 토하고 피로와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병원에서 확인한 결과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한 그는 결국 2006년 10월경 강제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듬해 3월에 세상을 떠났다. 회사는 황유미씨 가족의 산업재해 처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황유미씨와 같은 라인에서 2인 1조로 일을 하던 동료가 임신했다 유산이 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 자리에 새로 배치된 이숙영씨가 2006년 8월에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의 주장에 의하면 2인 1조로 일하는 현장에서 함께 일한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백혈병이라는 희귀병으로 상망했다는 것은 작업도중 발암물질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숙영씨의 예는 좀 더 객관적인 정황증거를 보여준다. 그는 13년간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동안 갖은 질병에 시달렸다. 1997년 6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그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서 기록에 의하면 그는 무려 118건에 걸쳐 병원을 찾은 것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2000년 12월에는 유산을 했으며 각종 접촉성 피부질환과 호흡기질환에 시달리며 결국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야 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보고의 예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집단 직업병 발병은 1988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이다. 인견사는 펄프에서 실을 뽑는 과정에서 대량의 이황화탄소 등 화공약품이 투입된다. 이 이황화탄소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신경독가스의 원료로 쓴 치명적인 유해물질로 일시 대량흡입 시 질식사하고 장기간 흡입 시 뇌신경을 마비시킨다. 당시 방사과에서 장기 근무했던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인해 팔다리마비와 언어장애, 기억력 감퇴, 정신이상 그리고 성 불능 및 콩팥기능장애로 고생하고 있었다. 노동부는 1988년 8월 3일 원진레이온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인체에 해로운 이황화탄소가 허용기준치(10ppm)의 2.6배, 유화수소는 1.3배가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이황화탄소 중독증은 계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노동자들은 1개월간 요양치료를 받고 산재등급에 따라 장애보상금을 받았다. 이후 이들 중 4명이 병세가 악화되어 재요양신청을 냈지만 노동부는 이들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해 장애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법적, 행정적 조치가 종결된 상태라며 재요양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는 당시 문송면군(당시 15세)의 수은중독으로 인한 사망사건과 더불어 우리사회가 직업병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원진레이온 직업병에 대한 노동부의 대응은 처음부터 실망 그 자체였다. 사실 노동부는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환자에 대한 사직강요 등 불법노동행위와 유해 작업환경을 눈감아 주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언론(한겨레신문 1988년 7월 22일자)을 통해서 사회에 알려지면서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가 사회문제로 번지게 되었다. 또 1987년 6월 민주화항쟁과 7-9월의 노동자대투쟁을 통한 노동조합의 성장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직업병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직업병에 대해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축소시키는 현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대책 없이 직업병에 노출될 것이다. 더욱이 시대에 역행하며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에서 직업병 문제는 쉽게 사회에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외국의 전자산업 및 반도체산업의 산업재해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2003년에 조사한 노동자들의 화학물질 중독으로 인한 사고 통계에 의하면 노동자 1만 명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는 0.3명, 제조업 노동자는 0.5명, 전자산업 노동자는 3명, 반도체산업 노동자의 경우는 6명으로 나타났다. 산업재해 피해는 단지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1982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실리콘밸리 지역의 상수원인 지하수 오염으로 피해를 당해서 오염 원인 제공자인 페어차일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984년 발표된 오염실태조사 보고에 따르면 그곳 대부분의 토양과 지하수가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에 오염되었고, 농도는 허용기춘치의 30배가 넘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IBM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자신들에게 발병한 암이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비롯되었다며 2003년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이 예방의학자 클랩 박사에게 조사를 의뢰한 결과 제조 과정에서 사용하는 용매나 발음물질이 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IBM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사망 자료를 분석해 IBM의 암 발병률이 전국 평균보다 상당히 높으며, 뇌암은 4배, 다발골수종은 6배, 유방암은 2배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또 2001년 영국 보건안전위원회(HSE)의 보고서에 의하면 영국의 내셔널반도체의 그리녹 공장 노동자의 암 발병률을 보면 여성은 페암, 위암, 유방암의 발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2-5배가량 높게 나타났고, 남성은 뇌암 발병률이 4배 높게 나왔다. (박일환, 반올림 공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40-44쪽 참고)
대책위원회와 ‘반올림’의 활동
2007년 3월 황유미씨의 억울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되어 그해 11월에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대책위는 온라인 활동을 병행하기로 하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라는 카페를 개설하였다. ‘반올림(#)’은 영문으로 ‘SHARPS’로 표기하며 각각 의미를 담은 영문의 앞 철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Solidarity(연대)의 S는 반도체 자본과 맞서 싸우는 이들과의 연대, Help(상담)의 H는 피해 담당과 법적 대응 지원, Action(행동)의 A는 노동권, 건강권 확보를 위한 직접 행동을 나타낸다. 또한 Research(연구)의 R은 반도체산업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연구, Propaganda(선전)의 P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선전과 홍보를 뜻한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병을 얻은 사람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대책위는 우선 피해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11월 당시까지 밝혀진 백혈병 발병자는 6명이었고 그중 5명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조사와 제보를 통해서 그 피해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책위는 피해사례를 모아 언론에 알리고 피해자들과 협의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반도체 사업장마다 안전 방지책을 세우도록 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대책위의 이런 활동으로 인해서 노동부는 2008년 1월 31일 ‘반도체 제조업체 근로자 건강실태’ 일제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부는 대책위의 조사 참여 요구를 거부하고 조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를 거부한 이유를 기업의 영업상의 정보와 생산기술이 포함되어 당사자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몇 명인지와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목록이라도 공개해 달라는 대책위의 요구도 거부하였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눈치를 보는 이중적인 행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피해자와 ‘반올림’은 산업재해 승인 여부를 위하여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유해물질이 어떻게 질병과 관련이 있는지를 증명하기는 어떤 경우에는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과 정부가 유해물질이 백혈병과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에 맞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신속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은 백혈병이나 악성 종양의 집단 발병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못하다.
앞으로의 전망
2009년 5월 15일 황유미씨를 비롯한 5명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에 대해서 전원 불승인 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심사청구를 제기했지만 지금까지 다른 사건의 경우에도 심사청구를 받아들인 경우가 거의 없어 산업재해 승인을 장담하기 어렵다. 남은 것은 행정소송 등의 절차가 있지만 그 역시 오랜 기간이 걸리고 법원이 선뜻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판단을 할지 의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 발병과 관련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노동조합의 결성이다. 원진레이온의 집단 산업재해가 인정된 것은 무엇보다도 1987년 6월 민주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인한 노동조합의 성장이 큰 힘이 되었다.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에서 노동자들이 권리주장은 불가능하다. 사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삼성에 노동조합만 있었어도 자신의 딸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거라고 아쉬워하였다. 둘째, 노동부를 비롯한 근로복지공단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켜내기 위해서 환골탈태하여야 한다. 이로서 너무 엄격한 산업재해 적용기준을 완화하여 노동자들을 지원해야 하며 예방차원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직업성 암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히 교육하고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 셋째, 노동 관련 기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이런 활동과 더불어 사회적으로는 사전 예방 제도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유해물질 목록과 허용기준치를 정확히 명시해야 한다. 한 예로 재개발 과정에서 건물을 해체할 때 발생하는 석명피해의 경우 우선적으로 건설 노동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그리고 공사현장 주변의 사람들에게 호흡기를 통해서 피해를 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기준 명시를 통해서 시민과 사회단체 그리고 관련 관청의 감시가 이루어 져야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기업이 단지 이윤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은 옛말에 불과하다.
기업은 사회적으로 공익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은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태도는 그 기업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기업이미지를 확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삼성이 소비자와 한국 사회에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삼성 노동자들에게 좋은 기업이 아니다. 삼성이 좋은 기업이 되려면 당장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할 때 비로소 좋은 기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김정대 신부, 기쁨과 희망, 동숭동 칼럼, 2010년 제5호.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