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알림 [2015.11.18]43일 노숙농성, 51일차 이어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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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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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8.(수) 이어말하기 43일 노숙농성, 51일차 이어말하기

 

사무처장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엄진영 사무처장.

반올림과 삼성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마음으로 응원하시 위해서 왔다. 비정규직철폐운동을 13년째 하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 활동을 13년을 했다는 건 노동자들이 13년째 불안정하다는 얘기이다. 얼마전 압수수색도 당하기도 하고 어렵다.

 

세상에 이렇게 얌전한 조직도 없는데, 왜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비정규직철폐 활동에서 법률 지원하다 2002년 철폐연대 활동에 결합했다.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사업장에서, 월담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노동자를 만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

철폐연대를 지금까지 끌어온 것은 투쟁자들의 힘이다. 철폐연대를 처음 출발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들어가면 바로 쫒겨났다.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이 늘어갔다. 노동조합이 남지 못하면 싸웠던 노동자들이 흩어지게 된다. 비정규직 철폐연대는 그릇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 연구자, 법률가. 등, 비정규직 철폐를 자기의 과제라 생각하는 이들을 회원으로 있다.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회원분들이 있어 긴장하며 열심히 해올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까 평가도 하면서 1년을 보내기도 했다. 조직전망을 논의하다 단체 해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우린 그간의 운동을 반성하고우리의 역할을 고민하다 나름대로의 방향을 잡아 월담에 집중하고 있다.

 

함께하는 이들이 자극이 되기도 하고, 원동력을 찾지 않을까.

반올림이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로 시작했지만 국제연대, 더 열악하고 더 불안정한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여기에 어떻게 맞설지 고민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청업체의 고민으로 조직 전망도 하고 있다.

 

월담이라는 공간을 설명해달라.

이 곳 공단 지역 노동자들은 삼성 LG 대자본이 다단계 하도급으로 내려오다보니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없고, 권리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안전의 문제도 취약하다. 이들을 조직해야 밑에서부터 흩어진 모래알을 모아야 원청 자본을 타격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대자본들을 흔들어볼 수 있지 않냐는 생각에 공단 조직화 사업을 시작했다. 월담 시작 전에는 책상에서 고민만 하기도 했다. 막상 월담을 노동자 계급추진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등과 하다보니 그 곳이 근대와 전근대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법 천지기도 했다. 노동자가 권리를 모르거나 알아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언어, 물리적 폭력, 임금 떼먹는 건 다반사다.

 

근로 계약서를 처음 쓰는 이유가 있는데, 어떤 조건을 일하는지 고용형태가 뭔지, 어떤 형태로 받기로 했는지를 명시하는 건데.. 계약서는 있는데 노동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더라. 탄력적 고용시간제 소용도 없이 고용인의 말에 좌지우지되더라. 노동자들의 힘이 없을 때 어떤 상태에 이르는지 보았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이 강남땅에도 비정규직 , 파견 노동자가 많을거다. 최소한의 것을 하자는데도 이 조차 못하고 있다. 안산은 현대가 아닌 시대를 사는 이들을 만났다.

 

공단 지역에 죽도록 일하다가도 원청에서 물량을 빼면 대기해야 상황이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도 하청이 많지않냐.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고 말하는데, 기계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 당하고 있다. 생산 시설이 문제가 되면. 바로 고쳐지나 사람이 힘들때는 무시당하는 현실이다.

 

지난 주 민중총궐기에서 박근혜정부에 우리의 얘기를 들어라고 외쳤다. 전태일 열사 45주일에 맞아 노동자대회와 함께 진행했는데, 전태일 열사가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전태일 평전에 나이어린 여성노동자들이 병에 걸리는 일이 나오는데, 삼성 백혈병 문제를 보면 지금이 다르다고 말하기 힘들다. 지난 해 회원 한 분이 소송하다 마지막에는 혼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런 일을 생각하면 예전에 맞아죽는 것을 고민하던 시대에서 이젠 배고파 죽는 것을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전태일 열사가 어린 여공을 보며 했던 고민이 여전하다. 노동조합으로 목소리도 못 내는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병을 얻어 죽는 시대인 것 같다.

 

나는 삼성 제품 안 쓰는데, 아이폰 케이스를 벗겼을 때 냄새가 유독하다. 나는 이 분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생각을 해 보면 노동자들, 소비자를 주민들의 건강에까지 얼마나 유해한 영향을 끼칠까.

 

우리는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문제를 시민들에게 어떻게 지역에 알릴까 고민을 해왔다. 노동자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장은 우리 사회에 같이 있고 주거지에 같이 있으니 주민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장 안의 노동자가 건강하지 않으면 주민이 건강할 수 없다. 공장의 공기의 질이 나쁘면 지역의 공기의 질이 나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지 않는 공장은 지역 주민의 건강도 같이 해치는 것이다.

 

삼성 불산누출 사고도 반올림 문제 제기했다. 우수토구 물고기 떼죽음 사태도 반올림도 함께 문제제기 했다. 공장안의 노동자들의 건강을 제대로 지켰다면 주민의 건강이나 물고기의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말?

전 삼성따위야 관심 없다. 삼성의 불안정한 열악한 노동자들 에는 관심있다. 기업이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국제인권기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을 갖고 행동하길 바란다.


 

두 번째 이야기손님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 님

 

오랜시간 기다리셨습니다. 이어말하기 51일차, 43일차 노숙농성이구요.

두 번째 초대손님과 이어말하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이번 손님은 운동진영의 각 공간마다 뛰어난 사회자들이 계신데, 반올림에 제가 있다면 해고자 운동계에서 이분만한 입담을 가진 분이 없지않습니까?

 

일단 물개 등록부터 하셔야죠. 3번 카메라가 잘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 저는 평택에서 왔구요 쌍용자동차 해고자 고동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비가오는 와중이라 다행히 스윗룸에서 이야길 나누게 됐어요.

하시고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고 해서, 꼭 두 번째 이야기손님으로 배치해달라 요청했기 때문에 이렇게 모셨습니다.

 

- 사실은 미리 질문지를 주시면 일목요연하게 할수있는데.. 그러지않으면 말이 길어질 것 같다는 뜻이었어요. 아무 준비도 안했습니다.

 

현장토크의 특징이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굉장히 자유롭기 때문에..어쨌든 오랜시간을 싸우고 계신 거잖아요. 반올림보다 한 해 정도 짧게, 힘들지만 웃으면서 싸우고 계신데, 현재 쌍차 투쟁 현황 간략하게?

 

- 2009년 정리해고 반대를 하면서 77일간 파업을 했고, 그 뒤로 굉장히 많은 일들을 했지만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시간이 있었고. 2012년에 대한문에서 정리해고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며 싸웠던 대한문 투쟁이 있고, 이후에 공장안 동료들과 함께 해고자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자며 이야기했던 시간이 있습니다.

그동안 해고자들은 이 사회에서 유령같은 존재였지만, 2012년 대선, 총선에 쌍용차문제 풀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교섭을 실무교섭만 10개월 동안 했었는데, 굉장히 어려웠어요. 투쟁이 더 쉽더라구요. 교섭은 예의를 갖춰서 서로 조심하자, 이런 룰들을 누구도 정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옥죄는 그런 게 있더라구요.

저는 간사라서 필기로 손목이 저리도록 기록하고, 마치고 나서 지부 사무실 컴퓨터로 옮겨적죠. 그 암흑같은 10개월을 보내다가 큰 진전을 얻기 위해서 인도에 갔었어요. 그 사이 김득중지부장이 단식을 45일 하셨고. 그 뒤에 쌍용차 경영진 입장이 또 바뀌었어요.

회사가 안된다고 하는 게 있었는데, 4대의제가 있어요. 유가족 지원대책/쌍용자동차 정상화 방안/해고자 복직/손배가압류 문제 인데, 3가지가 절대 안 된다는 거에요. 손배문제는 풀면 배임죄에 걸려서 안 된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법에 따라 풀어야 한다 당장 합의 안된다, 또 복직시기를 명시할 수 없다. 이렇게 ‘3불 의제’를 갖고 문제해결을 위해 인도로 넘어갔죠.

다시 대한문에 올라가는 심정으로 인도에 가서 해결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기자회견 때 말했어요. 그래서 돌아왔는데, 또 입장이 바뀐거죠.

손배가압류, 비정규직 문제 풀겠다, 해고자 복직시기는 안된다로 선회한 거죠.

지금은 대표교섭으로 이관한 상태에요. 원래 지부4, 기업노조4, 회사 4 이렇게 12명이 실무교섭을 해오다가, 이제 대표교섭으로 전환한 거죠.

그런데, 막상 이제 와서는 합의 못하겠다고 하는 거에요. 예컨대 두루뭉술하게 합의할 수 있는데, 이 문제해결을 명확하게 문서로 정리 못 한다는 거죠.

복직문제다보니까 많은 해고자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데, 어제 전체회의를 했거든요. 아직 해결된 건 아닌데 우리가 좀 더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바짝 조여야 한다고 제가 말했어요.

지금은 마무리 국면을 가더라도 다른 투쟁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시기입니다.

 

삼성에서도 피해자들을 유령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고, 저희도 사과, 보상, 재발방지 논의한 게 1년이 걸렸거든요. 실무교섭 시작해서는 반올림은 왜 나온거냐고 하고, 결국 그러다가 ‘또 하나의 약속’ 영화가 개봉하고, 그러다가 이제는 가족들 분열시켜서 조정위하자고 하고 그 과정에서 안을 받자고 하고.. 자본은 다 똑같은 거 같아요. 이런 태도들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 투쟁을 하는 쌍차 동지들이 참 자랑스럽기도 하구요..

 

- 그런 생각이 들어요. 교섭을 하다 보니, 예전 같았으면 어느 것 하나도 양보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쌍용차 정리해고자의 죽음,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보상하겠어요. 그런데 교섭 들어가서는 사실 커트라인을 설정해놓고.. 이런 현실들이 여러 가지로 힘들고, 사실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말이 안되면 저 역시 조합원들한테 성질을 내기도 해요. 그 때 더 열심히 싸워야 하지 않았냐고..

이런 얘길 하는 제가 갑자기 죄책감이 드는 거에요. 그런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더라구요.

거기서 놓치면 안 될 게 자본에 대한 입장이나 생각을 바꿔서는 안 되는데, 우리 안에서 치고박고 싸우는 거에요. 뭔가 같이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실제로 삼성에 맞서 잘 싸울수 있을텐데.. 우리끼리 어려워하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저는 투쟁하는 동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시야도 확장됐거든요. 그런 분들로부터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길바닥에서 잠은 자지만 어떻게 긍지를 가져야 하는지.. 그런데,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갈등이 생기면..

어쨌든, 뭔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같이 하고자 하는 마음은 함께 모두었으면 좋겠단 마음이 커요. 어렵더라도 함께 힘을 모으자 이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싸움을 통해 고동민 동지가 성장하게 된 계기나, 그 과정에서 아팠던 기억들 어렵지만 진솔하게 얘기해주셔서 감사하구요. 아까 인도에 가셔서 15일만에 돌아오게 된 연유가 있는건지..

 

- 첫날 뭄바이 공항 도착했을 때, 제가 영어를 잘 모르고 통역도 없이 갔어요. 네팔에서 다행히 대구지역에서 이주노조 활동을 하셨던 동지가 비행기타고 건너오신 거에요. 저희가 9월23일에 갔어요. 가을이었는데도 너무 더운 거에요. 밤 기온이 33도. 우리 한여름 같은 온도잖아요. 그렇게 어려운데, 공항에서 숙소까지 주욱 가는 길에, 도로가 있지만 차선은 없어요.

도로에 자전거도 다니고 오토바이랑 차도 다녀요. 그렇게 어지럽게 다니고 클락션을 막 울려대거든요. 그리고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집들이 1~2KM씩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너무 놀랐죠. 이런 곳에서 사는 분들은 과연 쌍용차 해고자문제에 관심을 가져줄까? 인도노동자들의 월급이 우리 돈으로 8만원인데요. 우리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거에요.

인상적인 장면은 전철이나 기차가 다니는데, 문이 없어요. 밖에서 다 매달려서 다녀요.

제가 인도가서 투쟁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날씨도 숨이 막히고 사람들 사는 모습도 숨이 막히고 굉장히 어려웠어요.

저희가 처음 단체들 몇 곳과 간담회를 현지에서 가졌는데, 마힌드라 회사가 만약에 면담 안 들어주면 삭발도 하고 단식도 하고 3보1배도 하겠다, 좀 도와달라 이런 얘길 드렸는데 이 분들 반응이 콧방귀도 안뀌는 거에요.

회사 앞에서 집회도 안되고, 만약에 하려고 하면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다는 거에요. 기자회견을 해달라고 했더니, 기자회견문도 당신들이 쓰고 기자섭외와 장소도 직접 섭외해라. 그러는 거에요.

제가 그래서 하겠다고 했거든요. 소통할 사람 한명만 섭외해달라. 그래서 막 한국말로 직접 밤새 기자회견문 작성하고, 한국에 있는 동지에게 영어 번역도 부탁하고 정신없이 분주하게 일했어요.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도의 노동단체 분들이 저희한테 조언을 하시는데, 심지어 마힌드라그룹의 3인자, 인사노무담당한테 편지를 쓰라는 거에요. 그에게 정중하게 편지를.. 사실 그 말씀을 듣고 처음 제 감정은 엄청 모욕적이었죠. 그래도 어떻게든 돌파해야 하니.. 그래서 이틀간 엄청 준비했는데, 사흘째 되는 날 이 분들께 어떤 얘길 드렸냐면.. 마힌드라가 특히 한국의 삼성처럼 명망있는 기업이라 인도사람들이 우리 부탁을 다들 꺼려하는 거에요. 그래서, 저희가 그들을 만날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 의견을 달라고 얘길 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의견을 내기 시작한 거에요. 그러던 차에, 노동조합 위원장인데, 대학교수인 분을 만났어요. 나이도 많은.. 이 양반이 저희를 도와주시겠다는 거에요. 자기가 뭄바이 지역 대표자들 다 모아보겠으니 그때 얘기해보자.

그렇게 해서, 대표자회의를 가보니 우리가 아직 얘기도 안했는데 우리 이야기를 이미 다들 알고 계시더라구요. 처음 만났던 사람들도 갑갑한 얘기만 해서 절망스러웠는데, 5일 만에 뭄바이 지역 노동자들 30명이 넘게 그 자리에 오신 거에요. 마힌드라 노조에서도 오시고.

결의문을 쓸 때에도 이 분들이 의견도 많이 주시고, 이 분들 명의로 마힌드라 회장한테 편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이것이 인도방식인 것 같더라구요.

그러자 마힌드라에서 바로 연락이 오더라구요. 정작 이 사람들은 우리 얘길 잘 모르더라구요. 인도의 많은 노동조합에서 푸쉬를 하니까 이 사람들이 억지로 떠밀려서 나온 거에요.

코엔카 의장이 허리수술을 해서 만날 수 없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저희가 따졌더니, 그럼 당신들이 병원으로 오라, 이러는 거에요. 너무 놀랐던 건, 저희가 만나달라고 했더니 만날 수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얘길 했는데, 코엔카가 10월에 교섭해라, 본인이 11월에 한국에 입국하니 그 때까지 해결 안 되면 방안을 찾아보겠다. 이런 말을 한 거에요.

그래서, 인도노총 2차 대표자회의에서 저희가 1천배를 하겠다고 했어요. 면담을 했지만 별다른 성과도 없었다. 그랬더니 인도노동자들이 하는 말이, 무슨 얘기냐. 11월에 가서 코엔카 본인이 어떻게 해보겠다는데, 인도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히 약속받은 거다. 그러던 차에 코엔카가 한국 경영진에 전화를 한 거에요. 한국에서 온 해고자들 빨리 보내라. 자기가 어차피 11월에 한국 갈테니 그 때까지 해결 안 되면 방법을 찾아보자. 이런 전화가 한국경영진에 실제로 네 번 정도 걸려왔대요.

그런데, 한국 경영진이 배짱이 좋은 게 전화가 와도 개긴 거에요. 그러다 뒤늦게 상무가 와서 단식중인 김득중 지부장한테 교섭을 하자 한거죠.

우리가 인도 가서 공동투쟁을 위한 간담회도 했고, 코엔카와 면담도 했었고.. 나름 성과도 있던 건데, 우리 조합원들은 막상 생각이 다른 거에요. 왜 들어오냐고..

사실 저는 그건 힘들지 않았는데, 인도에서 카레를 먹는데 그걸 삼시세끼를 먹으려고 하면.. 8일째 아침에 식빵을 튀겨서 설탕을 뿌려놓은 게 있는 거에요. 근데 그 안에 향신료가 잔뜩 들어있는 거에요. 어휴.

그래서 그게 굉장히 고생스러웠어요.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15일을 견딘 거에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자꾸 오면 안된다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카톡으로 잘 설명하고, 여기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만약에 11월까지 해결 안 되면 인도노총 동지들이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러다가 저희가 출국하는데 출입국 사무소에서 사인 안하면 안 보내겠다고 해서, 우리도 안 가고 싶다고 했어요.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경찰들과 공무원들이 어떻게 하는지 듣긴 하지만 실제론 어느 정도인지 모르잖아요. 저도 인도에서 그런 수모와 업신여김을 직접 겪으면서 굴욕감을 느꼈어요.

인도 사람들이 참 선량한데, 인도축제에서 춤을 추는 걸 구경하면서 그걸 찍은 거에요. 출입국관리소에서 당신들 관광온 거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해서, 마침 그걸 찍은 장면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인도의 새누리당 같은 고위급 정치인과 사진 찍은 걸 보여주니, 출입국관리소 태도가 돌변 하더라구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쫓겨나듯 한국으로 들어왔죠.

지금은 회사의 입장이 조금 달라진 게 있으니, 다시 인도로 가야할까봐요. (웃음)

 

코엔카는 왔나요?

 

- 11월초에 왔어요. 이사회 하고 갔는데, 그걸 계기로 해서 별다른 진전은 없어요.

 

인도 마힌드라 경영진의 얘길 들어보니, 저희와 사정이 참 다른 것 같아요. 강남좌파 할아버지가 계신데, 그 분 말씀이 “집 앞에 누가 있으면 나와보는 게 예의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 네. 맞아요. 예의가 있고 염치가 있으면 이렇게 하지않죠. ‘또 하나의 가족’이라면서 사실 이렇게 사람을 쓰다 버리는 게 어딨습니까.

 

어쨌든 쌍차도 해고자복직 문제 뿐만 아니라, 7년이라는 싸움의 과정에서 희생당하신 분들이 굉장히 많은 거잖아요. 그분들 때문에 마음도 많이 아프실 거고, 단순히 돈으로 거래할 상황이 아니실텐데.. 저희랑 비슷한 심정으로 싸움에 임하실텐데, 어쨌든 거래할 수 없는 존엄, 인권 이런 문제에 대해 함부로 취급하고 있는 삼성에 대해 따끔한 한 마디, 마지막으로 부탁드릴께요.

 

- 되게 어려운 질문 같아요. 저는 삼성이 악마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삼성이라는 집단에서 취직하는 걸 모든 부모들이 원한다고 하잖아요. 심지어 백혈병, 직업병 문제를 겪은 가족들도 사실은 우리 딸, 아들이 삼성에 입사해서 임금도 많고 혜택도 좋고..

제가 아는 누님도 삼성 기흥공장에 다니셨는데, 연봉이 3천이면 보너스를 3천을 준대요. 아니, 그러면 연봉을 5천을 주지, 그게 오히려 기업에도 이득이 아닌가? 제가 그런 말을 누님께 했는데, 아무 소리도 못한대요. 검사들한테 떡값도 돌리고, 이래도 삼성이 포장을 너무 잘 하니까 악마같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는 삼성에게 그런 얘길 하고 싶어요.

우리가 요구하는 것 다 들어주고 우리가 얘기하는 것 다 들어줘도 너희들 망할 일 없다. 이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너희들이 어떤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한들, 재발방지하고 배제없는 보상 하더라도 우리는 상처는 남을 수밖에 없다. 이걸 알아줬으면 해요.

삼성이 결국 이렇게 못하는 이유는 돈 한푼 아끼려는 거거든요. 이렇게 못살게 굴고, 감시하고.. 노조 만들면 임금 더 줘야하니까. 그 다음에 부당한 대우에 항의할 수도 있으니까.

이 점에 대해서 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악마가 아니라서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군수산업 자본이나 제약회사들 보면 정말 악마 같은 기업이잖아요. 인도 가서 놀랐던 게 9/1 총파업을 했어요. 그 때 유일하게 안 한 데가 삼성이랑 현대에요. 거긴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해야 하는데, 정치권 로비를 통해서 이걸 준수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게 삼성과 현대거든요.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면, 누구도 잊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하고 싶어요. 당신들이 우리 요구를 다 수용한다 하더라도 우린 결코 잊지 않을 거다. 독일인들이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더라도, 잊지 않듯이 우리 역시 그럴 거라는 거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