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19. 136일차 이어말하기 손님 :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집행위원장) 
10월부터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말을 건네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아프다. 청운의 부푼 꿈을 꿈고 삼성에 입사해서 병을 얻고 생명을 잃었다. 작년 10월에 시작한 이어말하기, 삼성이 직업병 문제를 책임지라고 외친 지 벌써 136일차이다. 강남에 자주 오신 분이다. 강남구청과 싸운 분. 삼성 반도체 전자 산업 노동자와 함께 이야기하고 도시 빈민 얘기를 나누고자 빈민해방실천연대 최인기 집행위원장 모시겠다. 소개 부탁한다. - 빈민해방실천연대는 용산 참사로 희생당한 분, 거리 노점상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는 주로 거리 노점상 분들과 활동하고 있다. 노동자의 문제와 도시 빈민의 문제는 밀접한 연관되어 있지 않나. 산업화 시작되어 농촌에서 살 수 없어 도시에 와서 노점도 하며 살지 않나. 먹고 살만한 직업을 찾지 못한 이들이 생존을 위해 노점을 하지 않나. 작년 강남구청과 힘든 싸움을 하지 않았나. 소개 해 달라. - 강북 안 사대문이 중심이었으나 70년대 넘어와서 강남이 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강남이 신도시로 중심이 되었다. 싸이 강남 스타일. 도 알려졌다시피 강남을 국제 도시로 알려지기도 했다. 상권이 형성되면서 노점도 장사가 잘 되었다. 강남 공화국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연구도 많이 되기도 한다. 강남 노점상을 대대적인 단속이 이루어졌다. 도로를 점거한다고 하여. 그런데 노점상이 사라진 자리에 화분,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화분은 통행을 방해하지 않나? 당연히 한다. - 용산 참사 이후에 용역반에 의한 철거가 뜸했는데, 강남에는 어마한 단속이 이루어졌다. 제 페북에 올린 영상이 100만건이 넘어갔다. 면도칼로 노점차를 훼손하고 넘어뜨리고, 용역반이 뒤집어 엎었다. 사람들이 쳐다봐도 상관 없이 진행되었다. 가슴 아픈 얘기다. 몇 컷의 사진으로만 나오지 않았지만. 댓글에는 강남 노점상이 얼마나 부자인줄아냐는 폄하도 있지 않았나? 대부분 생존을 위해 일하던 이들이지 않았나. 그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행동 마음이 아프더라. - 노점상에 대한 이미지 중의 아니라 조직폭력배가 개입되어 있다는 거다. 기업형 노점상이 있다. 는 것에 대해 노동자도 수입이 많은 이가 있지 않나. 일부 수입이 좋은 노점상이 있는 분도 있다. 큰 차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집이 없었다. 15명 중 장애가 있는 분, 집이 없는 분, 기초생활수급권자도 있었다. 개별과 전체, 구조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노점상을 개인으로 옹호하고 선량하다고 할 순 없다.사회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90년 대 초에 설문했더니, 노점 하기 전 직업이 농촌에서 농사 짓는 분이 많았다. 전라도 출신들이 많았다. 그 당시 전라도는 배제가 돼서, 웨이터나 노점을 많이 하셨더라. 90년대 중반에 다시 조사하니, 부모님이 노점상 하던 분들이 물려받았거나, 직장 그만든 후 하더라. 고학력화되는 경향이 있더라. 한국 사회 도시 빈민 문제가 없는 것처럼 취급되거나 왜곡되고 있다. 강남 스타일로 인해 관광특수가 이루어지는 거리에 노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얼마나 화가 많이 났겠나. 우리도 9년 동안 삼성 백혈병, 직업병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삼성이 돈 주려는데 더 달라 떼 쓰는 것 아닌가 라고 말하면 우리도 화가 많이 난다. - 제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올라간다. 반도체 소녀 연극을 봤다. 무거웠다. 또하나의 약속 영화를 봤는데, 아이 표정을 보니 슬퍼하더라. 공감을 많이 하더라. 이어말하기 준비하면서 검색 해 봤다. 오랜 시간 동안 빈민 활동에 몸담고 있었고 그 전에 노동 운동을 하셨더라. 빈민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 85년도에 고등학교 졸업했다. 30번 버스 타고 고대 앞을 지나다 보면, 대모하는 모습을 많이 봤고, 대자보를 봤다. 지각을 할 때도 대자보를 살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가야하는데, 고2때부터 학교를 잘 안 가는 문제아였다. 학교 출석일수만 채워 어찌 졸업하고 보성상으로 3년 일했다. 어느날 선전물.. 깨어있는 노동자들 공부하라는 말에 갔다. 대학생 형들이 노동현장에 와서 라면도 더 주고, 떠받들어 주더라. 대우를 받으니 우쭐해지기도 했다. 세미나를 한 게 내게 힘이 되었다. 백기완 선거.. 구로 시계 만드는 사업장에 들어갔는데, 거기도 직업병 문제가 있었다. 시계 도금을 위해서는 청산가리를 썼다. 선두에 서다보니 감옥에 여러 번 다녀왔다. 나보다 잔기수라 하더라. 몇 번을 왔다갔다 하더니. 청년 단체에서 초기 의장으로 활동하다 감옥을 들락날락 하다가 도시 빈민 활동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노동일 하는데, 내가 소중한 존재야, 가치있는 존재라고 말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대학생 형들이 말해준 깨어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 게 얼마나 좋았을까. 그 덕에 지금껏 활동을 이어올 수 있지 않았나 한다. 반올림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많아 농성장에 피해자들이 농성장을 찾기도 하는데, 삼성이 노동장을 더 귀이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춘을 바친 공간이 자신에게 병을 주고 뒤통수를 치리라 누가 생각했겠나. 더이사 지우고 싶은 일이 되지 않도록 삼성이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 삼성이 도시 빈민이라 얘기하는 분들이 노동자 내에서도 파견노동이 있다보니 누가 도시 빈민이라고 말하기 힘든 상황 같다. 노점도 하기 힘들 것 같은데, 노점 규모는 어떤지? - 한국 사회에서 가난, 도시 빈민은 은폐되고 있다. 잘 들어나지 않고 있다. 강남 대로를 걸으면서 누가 가난한지 시각적으로 알 수 없다. 먹는 것으로 극단적인 기아 상태에 놓인 이들을 잘 볼 수 없다. 통계 자료를 보면 자살률이 높지 않나. OECD 국가중에서도 가장 높지 않나. 젊은 이들이 결혼을 못하는 이들이 많다. 옛날에는 잘사는 동네, 못사는 동네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찜질방에서 자거나 도서관에서 자는 걸로 바뀌고 있다. - 가난에 대해 가난은 없다며, 자발적 가난을 얘기하는 건 위험하다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이 왜 조직되지 않냐면, 자신이 가난하지만 가난을 드러내지 않고 표현하지 않기 때문. 드러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 빈민, 농민 빈민이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로 농성 중 목요일을 담당하는데, <농민가> 3000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노래가 있다. 지금은 300백만이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노동자 밖에 없다.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이들이 빈민이다. 노동자이면서도 정규직 따로 있고 비정규직 따로 있다. 강북 따로 있고 강남 따로 있듯이. 구별짓기를 하고 갈라치기를 하고 편을 나누는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노동자의 노동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노동자들이 노동하고 집에 가면 그 때부터 노동자가 아니라 주민, 시민, 국민이 된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자본가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름 계급 의식을 느끼는데, 퇴근해서 집에가면 무관한 삶을 산다. 이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빈민해방실천연대에서 노동자, 도시 빈민 활동에 연대를 적극적으로 하는 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라고 느껴서이지 않을까. 자발적 가난 이데올로기가 무섭다.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았으니까. 니가 열심히 살았어야지. 라고 얘기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삼성직업병 문제도 너가 문제잖아. 니가 실수했잖아. 라며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 떠오른다. 이 싸움이 시작된 건 피해 노동자 중 한 분의 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내 얘기를 건네기 시작해서가 아닌가. 그것이 없었다고 지우려는 자와 명명백백하다고 진실을 알리는 이가 이 곳에서 전선을 치고 있다. 이 곳은 서초구청도 노점상을 철거하기 위해서 5억을 썼더라. 그 돈을 쓰는 게 누구한테 이득이 될까 궁금하다. 시민을 위한 것인가. 노점 중에도 합법이 있고 불법이 있다고 하던데, 그 구분이 무엇인가? - 87년 6월 항쟁 때 노점상 모임이 만들었다. 노점상들이 운동성이 크다. 작년 초 박근혜 대통령이 플랫카드를 만들어서 청년들이 푸드카 만들어서 일자리 창출 얘기 하지 않았나. 실제로 된 건 10개도 안 된다. 포장마차에 가서 떡볶이 먹으며 서민 코스프레 하는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게 노점상 철거에 나서는 건 모순되는 것 같다. - 이병박 대통령이 가락 시장 노점상에 갔다. 선거 때 인사동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2,3년 뒤 그 분들을 만났는데, 그 분들이 화를 많이 내더라.이명박이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 간적이 있는데, 시장에서는 어마어마하게 소문났지만, 실제 목도리를 감고 채소를 가져간 이명박이 채소값도 안 주고 갔다고 하더라. 저희랑 닮았다. 삼성이 대국민 사과 코스프레 하고, 대대적으로 보상위원회를 홍보하여 접수를 받는다 했지만 제대로 사과를 받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없더라. 보상은 생색내기나 얼마의 돈으로 덮으려 하고 있다. 어떤 분은 보상위원회에 신청했는데, 삼성의 일방적인 보상위원회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수수료 4만원 준다 하여 분노하시더라. 삼성에 따끔한 한 마디를 해달라. - 영화 또하나의 약속을 보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얘기가 나온다. 10년 전에 계란으로 바위쳐라. 라고 시를 쓴 적이 있고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라. 그 모양이 해골처럼 흩어질지라도 계란으로 쳐서 사람에게 알려라. 왜 이 사람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지 궁금해서 올려오도록, 그 들이 이 바위를 깰 것이라는 내용이다. 세상은 단박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를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거나, 쟁취하는 과정을 만들 것이다. 삼성의 사내 유보금이 크더라. 자본이 발전하는데도 삼성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 괴물같은 재벌인 삼성과 싸우는 것, 이 자리가 소중하고 중요한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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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19. 136일차 이어말하기
손님 :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집행위원장)
10월부터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말을 건네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아프다. 청운의 부푼 꿈을 꿈고 삼성에 입사해서 병을 얻고 생명을 잃었다. 작년 10월에 시작한 이어말하기, 삼성이 직업병 문제를 책임지라고 외친 지 벌써 136일차이다.
강남에 자주 오신 분이다. 강남구청과 싸운 분. 삼성 반도체 전자 산업 노동자와 함께 이야기하고 도시 빈민 얘기를 나누고자 빈민해방실천연대 최인기 집행위원장 모시겠다.
소개 부탁한다.
- 빈민해방실천연대는 용산 참사로 희생당한 분, 거리 노점상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는 주로 거리 노점상 분들과 활동하고 있다.
노동자의 문제와 도시 빈민의 문제는 밀접한 연관되어 있지 않나. 산업화 시작되어 농촌에서 살 수 없어 도시에 와서 노점도 하며 살지 않나. 먹고 살만한 직업을 찾지 못한 이들이 생존을 위해 노점을 하지 않나. 작년 강남구청과 힘든 싸움을 하지 않았나. 소개 해 달라.
- 강북 안 사대문이 중심이었으나 70년대 넘어와서 강남이 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강남이 신도시로 중심이 되었다. 싸이 강남 스타일. 도 알려졌다시피 강남을 국제 도시로 알려지기도 했다. 상권이 형성되면서 노점도 장사가 잘 되었다. 강남 공화국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연구도 많이 되기도 한다. 강남 노점상을 대대적인 단속이 이루어졌다. 도로를 점거한다고 하여. 그런데 노점상이 사라진 자리에 화분,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화분은 통행을 방해하지 않나? 당연히 한다.
- 용산 참사 이후에 용역반에 의한 철거가 뜸했는데, 강남에는 어마한 단속이 이루어졌다. 제 페북에 올린 영상이 100만건이 넘어갔다. 면도칼로 노점차를 훼손하고 넘어뜨리고, 용역반이 뒤집어 엎었다. 사람들이 쳐다봐도 상관 없이 진행되었다.
가슴 아픈 얘기다. 몇 컷의 사진으로만 나오지 않았지만. 댓글에는 강남 노점상이 얼마나 부자인줄아냐는 폄하도 있지 않았나? 대부분 생존을 위해 일하던 이들이지 않았나. 그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행동 마음이 아프더라.
- 노점상에 대한 이미지 중의 아니라 조직폭력배가 개입되어 있다는 거다. 기업형 노점상이 있다. 는 것에 대해 노동자도 수입이 많은 이가 있지 않나. 일부 수입이 좋은 노점상이 있는 분도 있다. 큰 차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집이 없었다. 15명 중 장애가 있는 분, 집이 없는 분, 기초생활수급권자도 있었다. 개별과 전체, 구조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노점상을 개인으로 옹호하고 선량하다고 할 순 없다.사회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90년 대 초에 설문했더니, 노점 하기 전 직업이 농촌에서 농사 짓는 분이 많았다. 전라도 출신들이 많았다. 그 당시 전라도는 배제가 돼서, 웨이터나 노점을 많이 하셨더라. 90년대 중반에 다시 조사하니, 부모님이 노점상 하던 분들이 물려받았거나, 직장 그만든 후 하더라. 고학력화되는 경향이 있더라.
한국 사회 도시 빈민 문제가 없는 것처럼 취급되거나 왜곡되고 있다. 강남 스타일로 인해 관광특수가 이루어지는 거리에 노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얼마나 화가 많이 났겠나. 우리도 9년 동안 삼성 백혈병, 직업병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삼성이 돈 주려는데 더 달라 떼 쓰는 것 아닌가 라고 말하면 우리도 화가 많이 난다.
- 제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올라간다. 반도체 소녀 연극을 봤다. 무거웠다. 또하나의 약속 영화를 봤는데, 아이 표정을 보니 슬퍼하더라. 공감을 많이 하더라.
이어말하기 준비하면서 검색 해 봤다. 오랜 시간 동안 빈민 활동에 몸담고 있었고 그 전에 노동 운동을 하셨더라. 빈민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 85년도에 고등학교 졸업했다. 30번 버스 타고 고대 앞을 지나다 보면, 대모하는 모습을 많이 봤고, 대자보를 봤다. 지각을 할 때도 대자보를 살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가야하는데, 고2때부터 학교를 잘 안 가는 문제아였다. 학교 출석일수만 채워 어찌 졸업하고 보성상으로 3년 일했다. 어느날 선전물.. 깨어있는 노동자들 공부하라는 말에 갔다. 대학생 형들이 노동현장에 와서 라면도 더 주고, 떠받들어 주더라. 대우를 받으니 우쭐해지기도 했다. 세미나를 한 게 내게 힘이 되었다. 백기완 선거.. 구로 시계 만드는 사업장에 들어갔는데, 거기도 직업병 문제가 있었다. 시계 도금을 위해서는 청산가리를 썼다. 선두에 서다보니 감옥에 여러 번 다녀왔다. 나보다 잔기수라 하더라. 몇 번을 왔다갔다 하더니. 청년 단체에서 초기 의장으로 활동하다 감옥을 들락날락 하다가 도시 빈민 활동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노동일 하는데, 내가 소중한 존재야, 가치있는 존재라고 말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대학생 형들이 말해준 깨어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 게 얼마나 좋았을까. 그 덕에 지금껏 활동을 이어올 수 있지 않았나 한다. 반올림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많아 농성장에 피해자들이 농성장을 찾기도 하는데, 삼성이 노동장을 더 귀이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춘을 바친 공간이 자신에게 병을 주고 뒤통수를 치리라 누가 생각했겠나. 더이사 지우고 싶은 일이 되지 않도록 삼성이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
삼성이 도시 빈민이라 얘기하는 분들이 노동자 내에서도 파견노동이 있다보니 누가 도시 빈민이라고 말하기 힘든 상황 같다. 노점도 하기 힘들 것 같은데, 노점 규모는 어떤지?
- 한국 사회에서 가난, 도시 빈민은 은폐되고 있다. 잘 들어나지 않고 있다. 강남 대로를 걸으면서 누가 가난한지 시각적으로 알 수 없다. 먹는 것으로 극단적인 기아 상태에 놓인 이들을 잘 볼 수 없다. 통계 자료를 보면 자살률이 높지 않나. OECD 국가중에서도 가장 높지 않나. 젊은 이들이 결혼을 못하는 이들이 많다. 옛날에는 잘사는 동네, 못사는 동네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찜질방에서 자거나 도서관에서 자는 걸로 바뀌고 있다.
- 가난에 대해 가난은 없다며, 자발적 가난을 얘기하는 건 위험하다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이 왜 조직되지 않냐면, 자신이 가난하지만 가난을 드러내지 않고 표현하지 않기 때문. 드러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 빈민, 농민 빈민이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로 농성 중 목요일을 담당하는데, <농민가> 3000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노래가 있다. 지금은 300백만이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노동자 밖에 없다.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이들이 빈민이다. 노동자이면서도 정규직 따로 있고 비정규직 따로 있다. 강북 따로 있고 강남 따로 있듯이. 구별짓기를 하고 갈라치기를 하고 편을 나누는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노동자의 노동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노동자들이 노동하고 집에 가면 그 때부터 노동자가 아니라 주민, 시민, 국민이 된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자본가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름 계급 의식을 느끼는데, 퇴근해서 집에가면 무관한 삶을 산다. 이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빈민해방실천연대에서 노동자, 도시 빈민 활동에 연대를 적극적으로 하는 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라고 느껴서이지 않을까. 자발적 가난 이데올로기가 무섭다.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았으니까. 니가 열심히 살았어야지. 라고 얘기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삼성직업병 문제도 너가 문제잖아. 니가 실수했잖아. 라며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 떠오른다. 이 싸움이 시작된 건 피해 노동자 중 한 분의 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내 얘기를 건네기 시작해서가 아닌가. 그것이 없었다고 지우려는 자와 명명백백하다고 진실을 알리는 이가 이 곳에서 전선을 치고 있다.
이 곳은 서초구청도 노점상을 철거하기 위해서 5억을 썼더라. 그 돈을 쓰는 게 누구한테 이득이 될까 궁금하다. 시민을 위한 것인가. 노점 중에도 합법이 있고 불법이 있다고 하던데, 그 구분이 무엇인가?
- 87년 6월 항쟁 때 노점상 모임이 만들었다. 노점상들이 운동성이 크다. 작년 초 박근혜 대통령이 플랫카드를 만들어서 청년들이 푸드카 만들어서 일자리 창출 얘기 하지 않았나. 실제로 된 건 10개도 안 된다.
포장마차에 가서 떡볶이 먹으며 서민 코스프레 하는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게 노점상 철거에 나서는 건 모순되는 것 같다.
- 이병박 대통령이 가락 시장 노점상에 갔다. 선거 때 인사동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2,3년 뒤 그 분들을 만났는데, 그 분들이 화를 많이 내더라.이명박이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 간적이 있는데, 시장에서는 어마어마하게 소문났지만, 실제 목도리를 감고 채소를 가져간 이명박이 채소값도 안 주고 갔다고 하더라.
저희랑 닮았다. 삼성이 대국민 사과 코스프레 하고, 대대적으로 보상위원회를 홍보하여 접수를 받는다 했지만 제대로 사과를 받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없더라. 보상은 생색내기나 얼마의 돈으로 덮으려 하고 있다. 어떤 분은 보상위원회에 신청했는데, 삼성의 일방적인 보상위원회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수수료 4만원 준다 하여 분노하시더라.
삼성에 따끔한 한 마디를 해달라.
- 영화 또하나의 약속을 보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얘기가 나온다. 10년 전에 계란으로 바위쳐라. 라고 시를 쓴 적이 있고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라. 그 모양이 해골처럼 흩어질지라도 계란으로 쳐서 사람에게 알려라. 왜 이 사람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지 궁금해서 올려오도록, 그 들이 이 바위를 깰 것이라는 내용이다. 세상은 단박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를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거나, 쟁취하는 과정을 만들 것이다. 삼성의 사내 유보금이 크더라. 자본이 발전하는데도 삼성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 괴물같은 재벌인 삼성과 싸우는 것, 이 자리가 소중하고 중요한 곳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