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6일(토) 15시, 강남역 8번출구 삼성전자홍보관 앞
반올림 노숙 농성 123일차
- 이어말하기 손님 : 김명복(고 김주현 아버님)
- 진행 : 이종란, 공유정옥
이종란 : 반올림이 오늘로 노숙농성 123일차를 맞이했습니다. 저희가 농성을 이어가는 까닭은 삼성전자 반도체, LCD 공장에서 죽거나 병들어간 피해자들에 대해 삼성이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아직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삼성은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어말하기 손님으로는 특별한 분이 오셨는데요, 천안 삼성lcd 노동자 고 김주현 님의 아버지 김명복 님께서 오셨습니다.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 많은 고민과 생각들을 하셨을 텐데,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드님의 죽음에 대해 삼성이 책임지고 삼성의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에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버님 말씀 듣기 전에 김주현님을 떠올리면서 1주기 때 작성했던 추모글을 낭독하겠습니다.
(추모글 참고 http://cafe.daum.net/samsunglabor/Jnqk/127)
2011년도 1월 11일 삼성전자 천안사업장 설비엔지니어 고 김주현씨가 안타깝게 스물 여섯의 나이로 회사 기숙사에서 떨어져 세상을 등진 뒤, 주현 가족들이 97일 간의 장례투쟁을 벌인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동토의 땅에서 살아가는 듯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싸웠는데, 얼마전 같은 공장에서 또 한분의 투신자살 소식을 듣고 또다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마주하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했습니다.
5년 전이지만 엊그제처럼 생생한 기억들, 그 아픔들을 다시금 우리와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고 김주현님의 아버님이 오셨습니다. 아버님,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오게 됐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현 아버님 : 저는 지금 열심히 생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단지 반올림에서 지금 하시는 행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을 항상 죄스럽게 생각하고 우리가족 또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렇습니다. 유족이 되어 삼성과 투쟁했을 때에도, 제가 여러 임원과 관계자께 부탁드렸던 것이 “삼성이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온 국민에게 많은 지탄을 받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수차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올림이 이런 추운 날씨에 노숙농성을 하게 된 일이 너무 안타깝고, 당시 유가족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에게 피맺힌 한을 남겼기 때문에, 삼성이 정말 진정성을 가지고 반올림과 대화에 나선다면, 삼성도 국민에게 지탄받지 않는 기업이 될 것이고, 피해를 겪고 울부짖는 유가족들에게도 충분한 보상과 사과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시 삼성 최지성 부회장과 약속했던 것이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주현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기를 문서로 약속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엊그제 그런 비극이 또다시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삼성 최지성 부회장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가족들과 반올림 활동가 분들, 힘겨운 농성이 끝날 수 있도록 거듭 삼성에 촉구합니다.
이종란 : 5년 전 분명히 약속했음에도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그 약속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내용으로 약속이 맺어졌는지 이야기 부탁드릴께요.
주현아버님 : 제가 당시 삼성에게서 (사과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문서로 받았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여기 계신 반올림 활동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삼성계열사 최초로 합의서를 받아냈습니다. 그 합의서 내용을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합의서. 삼성전자 주식회사 에 근무했던 망 김주현, 이하 갑이라 함. 삼성전자 주식회사 이하 을이라 함. 하나. 을은 망 김주현의 유가족에게 대해 진심으로 유감과 위로를 표한다. 둘, 을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셋,..” 이렇게 해서 제가 합의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합의서를 문서로 확약했음에도, 아직도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아직도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이종란 : 5년 전 아버님이 합의서를 받기까지, 그러니까 공식적인 사과를 받기가지 97일 동안 장례를 미루고 싸웠는데요, 저희도 이 합의서의 내용을 이제야 보게 됐는데요. 삼성이 이 합의서 공개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공개되지 않았지만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장례를 치루게 된 것인데요. 이 사과 한마디 하는 데에 긴 시간을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이렇게 공개를 아버님이 용기 있게 해주신 이유도 다시는 삼성이 이렇게 치사하게 행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내용 있는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는 반올림에게도 힘을 보탠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장례투쟁을 함께 했던 공유정옥 님에게도 얘기를 듣고 싶어요. 삼성의 잘못된 태도, 별 거 아닌 문제인데도 왜 이렇게 삼성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당시의 싸움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공유정옥 : 삼성이 왜 사과를 안 할까. 참 의문이에요. 사실 사과가 처음에 빨리하면 아주 간단하거든요.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열심히 일한 당신의 아드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 안타깝고 책임을 느낀다.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 단계에서는 사과 문제가 해결될 텐데, 김주현 님 장례를 석 달 넘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삼성이 사과해야 할 게 점점 늘어나는 것 같더라구요. 시간을 끌수록 나중에는 사과를 2박3일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 된 거죠. 주현씨가 건장하고 착한 아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입사해서 피부가 짓무르고 연고를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 게다가 상사들이 들들 볶고 주말에도 집에 가지 못할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고. 저는 깜짝 놀란 게 빈소에 동료들이 안 와요. 우리가 직장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사실 친해야만 오는 게 아니잖아요. 슬픔을 나누고 유족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삼성이 막은 거죠. 그런 것도 사과했어야 하는 거고.
나중에는 아버님이 너무 답답하니까 새벽마다 공장 정문 앞에 가서 피켓시위를 했어요. 그런데도 삼성에서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지나면서 사과할 거리가 늘어나서, 유감과 위로를 표시했다곤 하지만 할려다 말은 것 같아요.
이종란 : 저희가 당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주현님 돌아가신 지 하루 만에 삼성이 모텔로 아버님 불러내서 돈을 주겠다고 한 것이에요.
공유정옥 : 자기네가 인정하면 법적으로 문제될까봐 그런다. 이게 삼성의 입장이잖아요. 제가 볼 땐 약간 발달이 덜 됐다고 해야 하나. 사과 안하고 반성 안 하고. 그것을 둘러대기 위해 제2, 제3의 거짓말을 하듯이, 삼성은 누군가에게 야단을 맞거나 잘못을 지적받거나 하지 못한 권력이라서 발달이 덜 한 것 아닐까 여겨져요.
이종란 : 결국 사과의 의미는 아드님의 죽음에 대해 삼성이 책임이 있다는 건데요. 사실 김주현님이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어요. 삼성 들어가서 하루 12시간, 많게는 14시간까지 교대근무를 하고, 심지어 호출근무도 했다고 해요. 생산량 압박도 심하다고 들었거든요. 군대식의 업무, 조직문화가 있고 그런 환경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치료를 받느라 병가휴직을 냈고 두 달 간 쉬다가 복귀하셔서 결국 투신자살을 하신 거거든요. 명백한 산업재해라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삼성의 돈과 협박도 뿌리치고, 주현 아버님과 가족들이 똘똘 뭉쳐 어려운 투쟁 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싸움과정에서 인권유린, 김주현씨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삼성의 책임도 그렇고, 이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는데, 지금 이렇게 반올림이 삼성 직업병 문제에 대해 삼성의 책임을 묻는 노숙농성을 하고 있잖아요. 아버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명복 : 한마디로 (삼성이) 참 바보 같다. 이렇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삼성에 제가 처음 그런 말을 했어요. 담당자에게 부모로서 나도 책임이 있다, 삼성도 잘못이 있다. 이 점에 대해 우리 서로 사과하자. 이렇게 얘기했는데, 갑자기 모텔로 불러내서 금전적인 얘기하면서, 줄 때 받아라. 지금 거부하면 나중에 기회도 없다고 했거든요. 그개 참 분개스러웠어요.
자식이 죽었는데 몇 푼 받고 삼일장 하고 끝내라는 말이었거든요. 그 당시에도 담당자에게 이런 얘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삼성이 참 인재들을 많이 뽑는다고 하는데, 왜 이런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정중하게 사과하면 간단히 끝날 일인데, 얄팍하고 교활하게 꼼수를 꼭 써요. 그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지속된다고 생각해요.
진정성을 갖고 대화하라. 그러면 풀어진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줄곧 해왔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늦었어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다가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재발방지는 해놓고, 충분한 보상, 사과는 왜 못하냐는 거에요.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 상당수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았을 때 마지못해 하는 그런 사과는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겁니다.
공유정옥 : 괜찮으시면 그 때 얘기를 더 해봐도 될까요? 주현씨가 나이가 85년생이었죠. 어떤 아들 이었나요. 주현씨가 입사한 게 2010년 1월. 제가 듣기로는 워낙 우수한 학생이라서 삼성이란 경쟁사랑 저울질하다가 삼성으로 갔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김명복 : 삼성, 엘지 두 군데 원서 넣었는데 두 군데 다 됐었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삼성전자를 뿌듯한 마음으로 입사했었는데, 안타까운 게 뭐냐면 얘가 1개월간 혹독한 교육연수를 받고 오더라구요.
거길 다녀와서는 주현이가 제게, “아버지 제가 생각했던 삼성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얘길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게 무슨 소리냐.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회사인데, 그런 말 말고 열심히 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성이라면 국민들은 무조건 선호하는 것 같아요. 국민들도 잘못돼있지만, 제가 그 일을 겪으면서 참 언론에도 책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언론이 아직도 어용언론이 조중동 같은 곳들이 있어요. 이런 언론들이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가 될 것 같아요.
공유정옥 : 회사에서 못되게 이야기를 하면서 “사회 초년생이 직장에 잘 적응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말을 언론을 통해 흘리기도 했었잖아요. 그런데, 주현씨가 삼성전자가 첫 직장이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아버님, 어릴 때부터 주현씨가 일을 많이 했었다면서요?
김명복 : 주현이는 공익근무를 하면서 수출입단지에서 현장 근무도 했었어요.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었는데도, 정말 열심히 현장에서 묵묵히 이겨낸 경력이 있거든요. 그래서 삼성은 지금도 제가 얘기하고 싶은 점은, 하루빨리 민주노조를 인정해야만이 앞으로 삼성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분명히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아니면 반도체 산업에서 다른걸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공유정옥 : 근무하는 동안 삼성이 이렇게 노동자들을 스트레스 받게 해서, 병에 걸린 분들이 많잖아요. 김주현님 뿐만 아니라 혹시 업무상 스트레스라든지 우울증 등 기억나는 사례가 있나요?
이종란 : 자살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요, 삼성노동자들의 산재상담을 하다보면 암 피해보다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나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삼성이 개개인의 문제로 감춰버리는 거에요. 예컨대 연인문제나 가족문제로 포장되거나 둔갑되더라. 사실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때문에 기인한 문제인데도 삼성이 그런 악랄한 짓을 하더라고요. 심상정 의원이 몇 년전에 폭로한 삼성의 노조파괴 관련 문건이 공개됐을 때에도, 반올림 등 직업병 문제나 과다근로로 인한 자살문제가 언급되어 있었는데, 삼성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고작 기숙사 창문에 방지턱 보강 등을 자살방지책이라고 내놓기도 했어요. 그런데 새해벽두부터 차장급인 삼성 노동자가 삼성디스플레이공장에서 경찰에 신고하고 투신을 했어요. 경찰에 신고한 건 아무래도 자신의 죽음이 은폐되지 않길 바래서였던 것 같아요
공유정옥 : 그래서 기사라도 나온 건데, 주현씨 돌아가시기 전에도 옆동 기숙사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다죠?
김명복 : 그 당시 순천향병원 갔을 때 전혀 뉴스는커녕 소문도 듣지 못했는데, 여기 계신 종란 노무사님이나 그런 활동가분들 통해서 알려진 얘기였어요. 그래서 국민들이 삼성전자를 정확히 아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 억울한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지, 계속 삼성이 은폐하고 언론이 옹호하면 그런 일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활하게 피해자들을 눈속임하고, 다 합의한 것처럼 언론플레이하고,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해요. 이런 방식은 옛날 낡은 방식이고 국민들은 이제 다 알아요. 삼성도 선진국가로 가는 방식을 따라야 해요.
공유정옥 ; 저는 장례투쟁을 하면서 영정에 국화가 생화였는데, 바짝 말라갔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한테 벌금을 내라고 해서, 봤더니. 삼성전자에 경비를 하시는 분들이 저를 고소했더라구요. 그래서 죄목이 뭔지 보니까 세 개 더라구요. 명예훼손에 폭력을 휘둘렀고, 그 다음에 업무를 방해했다. 내가 에스원에 관심이 없는데, 저는 당시 언어폭력도 못하던 사람이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저는 업무방해 부분이 제일 화가 났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주현씨 이모님, 어머님과 함께 피켓을 들고, (삼성본관에) 일인시위를 하러 왔다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어머니가 삼성전자 사람들과 얘기 좀 하자 그런데 왜 가로막느냐 하면서 울부짖고 계셨거든요. 저는 그래서 가봤더니 서초 경비과장이 있더라구요. 제가 이 분들 진정하실 수 있도록 삼성에서 누구 좀 나와 보라고 중재하라고 얘기했거든요. 그게 명예훼손, 업무방해, 폭력 혐의가 됐더라고요. 선고유예를 받았는데, 그것도 참 억울하더라구요. 그 때 제가 이 사람들이 얼마나 바보같은 줄 알았던 게 동영상을 찍어서 그걸 보면, 덩치 큰 경비가 서있고 저는 영정피켓을 들고 서 있는 걸 보면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게 확인됐거든요.
김명복 : 그 고소고발은 당사자들이 절대 안합니다. 당시 (삼성) 관계자들과 합의를 볼 때, 우리 싸움에 함께 한 단체들이 주현이로 인해서 여러 가지 시위나 행동에 대해서는 일체 책임을 묻지 말아라. 그렇게 합의를 볼 때에도 약속하고 (삼성)관계자들과 이야기했어요. 이 일로 인해 여러 활동가들이 피해를 볼까봐 저 나름대로 생각했던 거에요.
공유정옥 : 삼성이 얼마나 유치하고 치사하냐면, 경비노동자들을 동원해서 그들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게 하고.. 당시 아버님도 갖은 수모를 겪으시고 협심증도 있었잖아요.
김명복 : 그 때 6, 7명이 저를 시위현장에서 끌어내면서 제가 삼성본관 앞에 그들과 실랑이할 때 손에 피를 흘려서 피묻은 손으로 유리벽을 수없이 쳤죠. 그러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죠. 그 때 응급실에 가서 진단받아보니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들었어요. 유병 요인이 쇼크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시술을 받았는데, 지금도 3개월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여기 계신 한혜경씨, 어머님, 활동가분들 이렇게까지 고생하시는 줄 몰랐어요. 거듭 죄스럽게 생각하고, 제가 도움이 된다면 오늘 이 자리가 조금이나 도움된다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삼성 변해야 합니다.
제게도 경험이 있지만, 처음에는 이들이 있을 수도 없는 합의내용을 감히 들고 나왔을 때.. 조금만 참으시면 결국 이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당시 싸움에 대해서도 저 나름대로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나중에 제가 주현이한테 그곳에 가서 만났을 때는, 우리가 이렇게 합의서를 받아냈다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항상 건강하셔야 합니다.
공유정옥 : 아버님, 지금도 셔틀버스 운행하는 일과 동료들을 열심히 조직하는 일을 하고 계신데.. 저는 주현씨가 아버님 정말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김명복 : 제가 주현이한테 그런 얘기한 적 있어요. 주현아,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있냐? 그러니까, 얘가 아버지잖아. 제가 상당히 사업적으로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어요. 생활상의 어려움도 많았었죠. 애들한테는 조금이나마 빚진 것을 갚고 죽었으면.. 솔직히 지금도 조금씩 갚아나가려고 했던 찰나였어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그 아이가 입던 잠옷과 런닝셔츠를 쇼파에 놓습니다. 저녁 때 되면 또 그아이가 잘 자리에 이부자리 깔고, 밥상에서도 주현이 밥부터 먼저 퍼 담습니다. 벌써 5년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지금도 주현이가 제 곁에서 떠났다는 게 실감나지 않아요. 나름대로 제가 글도 쓰고, 주현이 집에 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대화나누기도 해요. 지금 광화문 광장에도 세월호 가족들 항상 위로해야 합니다. 제 셔틀버스 앞에는 아직도 노란리본이 붙어져 있습니다, 동료들이 이제 그만 떼라는데 저는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떼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분명히 희망이 있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이종란 : 주현씨께 드리는 편지글 마지막으로 낭독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김명복 : 편지글 낭독하겠습니다.
2011년 12월 27일날 쓴 거에요.
날씨가 추워지면 주현이 생각이 더 난다. 겨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무엇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지.
죽음. 아니 아직 주현에게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명예, 억울함 어느 정도는 해결해야 내가 눈을 감는다.
2012년 12월
다시 찾아오는 추운 날씨, 정말 싫다.
아들 주현. 정말 없는걸까. 아직 믿기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 내가 가장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얼마 있으면 만날 것 같다.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사랑했노라. 미안했다. 그리고 지켜주고 싶었노라.
2015년 2월 2일
다시 찾아온 겨울. 그동안 이사도 했다.
우리 주현이가 정말 같이 살고싶었던 아파트.
그러나 지금 내 곁에 없다. 아니 더 좋은 곳으로 갔다.
부모의 가슴보다 더 따스한 곳으로.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 목숨 다하도록 사랑해주고 싶었다...
2015년 1월 9일
오늘도 춥다. 하지만 춥다는 말 못하겠다.
주현이는 추운 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그토록 괴로워하는 자식을 왜 몰라줬을까.
왜 그가 희생해야 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가 왜 먼저 가야 하는지.
신이 있다면 그가 먼저 가서는 안 될 일이다. 신이 계신지 의심스럽다.
2016년 1월10일
정말 그가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너무 많은 것을 남겨두었기에 꼭 돌아올 것이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주현, 그냥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
너무 많은 아쉬움만 그리움만 남겼기에,
아직 우리곁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지만은 않다.
우리 곁에 영원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눈물이 흐른다.
이종란 : 삼성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 수가 222명, 사망자가 76명이고. 주현씨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죽음의 행렬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대접받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어말하기 손님으로 나오셔서 진심을 다해 말씀 나눠주신 아버님께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제 입춘이 엊그제 지났고, 봄을 맞이하는 반올림 투쟁. 어찌보면 사람을 살리는 투쟁이라 생각하는데요, 아버님 말씀 통해서 우리도 꼭 이기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김 : 지금은 비록 극심한 추위 속에 고생하시지만,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외롭지않다는 것만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2월 6일(토) 15시, 강남역 8번출구 삼성전자홍보관 앞
반올림 노숙 농성 123일차
- 이어말하기 손님 : 김명복(고 김주현 아버님)
- 진행 : 이종란, 공유정옥
이종란 : 반올림이 오늘로 노숙농성 123일차를 맞이했습니다. 저희가 농성을 이어가는 까닭은 삼성전자 반도체, LCD 공장에서 죽거나 병들어간 피해자들에 대해 삼성이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아직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삼성은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어말하기 손님으로는 특별한 분이 오셨는데요, 천안 삼성lcd 노동자 고 김주현 님의 아버지 김명복 님께서 오셨습니다.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 많은 고민과 생각들을 하셨을 텐데,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드님의 죽음에 대해 삼성이 책임지고 삼성의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에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버님 말씀 듣기 전에 김주현님을 떠올리면서 1주기 때 작성했던 추모글을 낭독하겠습니다.
(추모글 참고 http://cafe.daum.net/samsunglabor/Jnqk/127)
2011년도 1월 11일 삼성전자 천안사업장 설비엔지니어 고 김주현씨가 안타깝게 스물 여섯의 나이로 회사 기숙사에서 떨어져 세상을 등진 뒤, 주현 가족들이 97일 간의 장례투쟁을 벌인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동토의 땅에서 살아가는 듯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싸웠는데, 얼마전 같은 공장에서 또 한분의 투신자살 소식을 듣고 또다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마주하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했습니다.
5년 전이지만 엊그제처럼 생생한 기억들, 그 아픔들을 다시금 우리와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고 김주현님의 아버님이 오셨습니다. 아버님,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오게 됐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현 아버님 : 저는 지금 열심히 생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단지 반올림에서 지금 하시는 행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을 항상 죄스럽게 생각하고 우리가족 또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렇습니다. 유족이 되어 삼성과 투쟁했을 때에도, 제가 여러 임원과 관계자께 부탁드렸던 것이 “삼성이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온 국민에게 많은 지탄을 받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수차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올림이 이런 추운 날씨에 노숙농성을 하게 된 일이 너무 안타깝고, 당시 유가족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에게 피맺힌 한을 남겼기 때문에, 삼성이 정말 진정성을 가지고 반올림과 대화에 나선다면, 삼성도 국민에게 지탄받지 않는 기업이 될 것이고, 피해를 겪고 울부짖는 유가족들에게도 충분한 보상과 사과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시 삼성 최지성 부회장과 약속했던 것이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주현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기를 문서로 약속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엊그제 그런 비극이 또다시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삼성 최지성 부회장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가족들과 반올림 활동가 분들, 힘겨운 농성이 끝날 수 있도록 거듭 삼성에 촉구합니다.
이종란 : 5년 전 분명히 약속했음에도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그 약속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내용으로 약속이 맺어졌는지 이야기 부탁드릴께요.
주현아버님 : 제가 당시 삼성에게서 (사과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문서로 받았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여기 계신 반올림 활동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삼성계열사 최초로 합의서를 받아냈습니다. 그 합의서 내용을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합의서. 삼성전자 주식회사 에 근무했던 망 김주현, 이하 갑이라 함. 삼성전자 주식회사 이하 을이라 함. 하나. 을은 망 김주현의 유가족에게 대해 진심으로 유감과 위로를 표한다. 둘, 을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셋,..” 이렇게 해서 제가 합의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합의서를 문서로 확약했음에도, 아직도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아직도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이종란 : 5년 전 아버님이 합의서를 받기까지, 그러니까 공식적인 사과를 받기가지 97일 동안 장례를 미루고 싸웠는데요, 저희도 이 합의서의 내용을 이제야 보게 됐는데요. 삼성이 이 합의서 공개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공개되지 않았지만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장례를 치루게 된 것인데요. 이 사과 한마디 하는 데에 긴 시간을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이렇게 공개를 아버님이 용기 있게 해주신 이유도 다시는 삼성이 이렇게 치사하게 행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내용 있는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는 반올림에게도 힘을 보탠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장례투쟁을 함께 했던 공유정옥 님에게도 얘기를 듣고 싶어요. 삼성의 잘못된 태도, 별 거 아닌 문제인데도 왜 이렇게 삼성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당시의 싸움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공유정옥 : 삼성이 왜 사과를 안 할까. 참 의문이에요. 사실 사과가 처음에 빨리하면 아주 간단하거든요.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열심히 일한 당신의 아드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 안타깝고 책임을 느낀다.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 단계에서는 사과 문제가 해결될 텐데, 김주현 님 장례를 석 달 넘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삼성이 사과해야 할 게 점점 늘어나는 것 같더라구요. 시간을 끌수록 나중에는 사과를 2박3일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 된 거죠. 주현씨가 건장하고 착한 아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입사해서 피부가 짓무르고 연고를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 게다가 상사들이 들들 볶고 주말에도 집에 가지 못할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고. 저는 깜짝 놀란 게 빈소에 동료들이 안 와요. 우리가 직장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사실 친해야만 오는 게 아니잖아요. 슬픔을 나누고 유족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삼성이 막은 거죠. 그런 것도 사과했어야 하는 거고.
나중에는 아버님이 너무 답답하니까 새벽마다 공장 정문 앞에 가서 피켓시위를 했어요. 그런데도 삼성에서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지나면서 사과할 거리가 늘어나서, 유감과 위로를 표시했다곤 하지만 할려다 말은 것 같아요.
이종란 : 저희가 당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주현님 돌아가신 지 하루 만에 삼성이 모텔로 아버님 불러내서 돈을 주겠다고 한 것이에요.
공유정옥 : 자기네가 인정하면 법적으로 문제될까봐 그런다. 이게 삼성의 입장이잖아요. 제가 볼 땐 약간 발달이 덜 됐다고 해야 하나. 사과 안하고 반성 안 하고. 그것을 둘러대기 위해 제2, 제3의 거짓말을 하듯이, 삼성은 누군가에게 야단을 맞거나 잘못을 지적받거나 하지 못한 권력이라서 발달이 덜 한 것 아닐까 여겨져요.
이종란 : 결국 사과의 의미는 아드님의 죽음에 대해 삼성이 책임이 있다는 건데요. 사실 김주현님이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어요. 삼성 들어가서 하루 12시간, 많게는 14시간까지 교대근무를 하고, 심지어 호출근무도 했다고 해요. 생산량 압박도 심하다고 들었거든요. 군대식의 업무, 조직문화가 있고 그런 환경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치료를 받느라 병가휴직을 냈고 두 달 간 쉬다가 복귀하셔서 결국 투신자살을 하신 거거든요. 명백한 산업재해라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삼성의 돈과 협박도 뿌리치고, 주현 아버님과 가족들이 똘똘 뭉쳐 어려운 투쟁 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싸움과정에서 인권유린, 김주현씨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삼성의 책임도 그렇고, 이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는데, 지금 이렇게 반올림이 삼성 직업병 문제에 대해 삼성의 책임을 묻는 노숙농성을 하고 있잖아요. 아버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명복 : 한마디로 (삼성이) 참 바보 같다. 이렇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삼성에 제가 처음 그런 말을 했어요. 담당자에게 부모로서 나도 책임이 있다, 삼성도 잘못이 있다. 이 점에 대해 우리 서로 사과하자. 이렇게 얘기했는데, 갑자기 모텔로 불러내서 금전적인 얘기하면서, 줄 때 받아라. 지금 거부하면 나중에 기회도 없다고 했거든요. 그개 참 분개스러웠어요.
자식이 죽었는데 몇 푼 받고 삼일장 하고 끝내라는 말이었거든요. 그 당시에도 담당자에게 이런 얘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삼성이 참 인재들을 많이 뽑는다고 하는데, 왜 이런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정중하게 사과하면 간단히 끝날 일인데, 얄팍하고 교활하게 꼼수를 꼭 써요. 그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지속된다고 생각해요.
진정성을 갖고 대화하라. 그러면 풀어진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줄곧 해왔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늦었어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다가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재발방지는 해놓고, 충분한 보상, 사과는 왜 못하냐는 거에요.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 상당수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았을 때 마지못해 하는 그런 사과는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겁니다.
공유정옥 : 괜찮으시면 그 때 얘기를 더 해봐도 될까요? 주현씨가 나이가 85년생이었죠. 어떤 아들 이었나요. 주현씨가 입사한 게 2010년 1월. 제가 듣기로는 워낙 우수한 학생이라서 삼성이란 경쟁사랑 저울질하다가 삼성으로 갔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김명복 : 삼성, 엘지 두 군데 원서 넣었는데 두 군데 다 됐었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삼성전자를 뿌듯한 마음으로 입사했었는데, 안타까운 게 뭐냐면 얘가 1개월간 혹독한 교육연수를 받고 오더라구요.
거길 다녀와서는 주현이가 제게, “아버지 제가 생각했던 삼성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얘길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게 무슨 소리냐.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회사인데, 그런 말 말고 열심히 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성이라면 국민들은 무조건 선호하는 것 같아요. 국민들도 잘못돼있지만, 제가 그 일을 겪으면서 참 언론에도 책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언론이 아직도 어용언론이 조중동 같은 곳들이 있어요. 이런 언론들이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가 될 것 같아요.
공유정옥 : 회사에서 못되게 이야기를 하면서 “사회 초년생이 직장에 잘 적응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말을 언론을 통해 흘리기도 했었잖아요. 그런데, 주현씨가 삼성전자가 첫 직장이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아버님, 어릴 때부터 주현씨가 일을 많이 했었다면서요?
김명복 : 주현이는 공익근무를 하면서 수출입단지에서 현장 근무도 했었어요.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었는데도, 정말 열심히 현장에서 묵묵히 이겨낸 경력이 있거든요. 그래서 삼성은 지금도 제가 얘기하고 싶은 점은, 하루빨리 민주노조를 인정해야만이 앞으로 삼성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분명히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아니면 반도체 산업에서 다른걸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공유정옥 : 근무하는 동안 삼성이 이렇게 노동자들을 스트레스 받게 해서, 병에 걸린 분들이 많잖아요. 김주현님 뿐만 아니라 혹시 업무상 스트레스라든지 우울증 등 기억나는 사례가 있나요?
이종란 : 자살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요, 삼성노동자들의 산재상담을 하다보면 암 피해보다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나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삼성이 개개인의 문제로 감춰버리는 거에요. 예컨대 연인문제나 가족문제로 포장되거나 둔갑되더라. 사실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때문에 기인한 문제인데도 삼성이 그런 악랄한 짓을 하더라고요. 심상정 의원이 몇 년전에 폭로한 삼성의 노조파괴 관련 문건이 공개됐을 때에도, 반올림 등 직업병 문제나 과다근로로 인한 자살문제가 언급되어 있었는데, 삼성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고작 기숙사 창문에 방지턱 보강 등을 자살방지책이라고 내놓기도 했어요. 그런데 새해벽두부터 차장급인 삼성 노동자가 삼성디스플레이공장에서 경찰에 신고하고 투신을 했어요. 경찰에 신고한 건 아무래도 자신의 죽음이 은폐되지 않길 바래서였던 것 같아요
공유정옥 : 그래서 기사라도 나온 건데, 주현씨 돌아가시기 전에도 옆동 기숙사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다죠?
김명복 : 그 당시 순천향병원 갔을 때 전혀 뉴스는커녕 소문도 듣지 못했는데, 여기 계신 종란 노무사님이나 그런 활동가분들 통해서 알려진 얘기였어요. 그래서 국민들이 삼성전자를 정확히 아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 억울한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지, 계속 삼성이 은폐하고 언론이 옹호하면 그런 일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활하게 피해자들을 눈속임하고, 다 합의한 것처럼 언론플레이하고,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해요. 이런 방식은 옛날 낡은 방식이고 국민들은 이제 다 알아요. 삼성도 선진국가로 가는 방식을 따라야 해요.
공유정옥 ; 저는 장례투쟁을 하면서 영정에 국화가 생화였는데, 바짝 말라갔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한테 벌금을 내라고 해서, 봤더니. 삼성전자에 경비를 하시는 분들이 저를 고소했더라구요. 그래서 죄목이 뭔지 보니까 세 개 더라구요. 명예훼손에 폭력을 휘둘렀고, 그 다음에 업무를 방해했다. 내가 에스원에 관심이 없는데, 저는 당시 언어폭력도 못하던 사람이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저는 업무방해 부분이 제일 화가 났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주현씨 이모님, 어머님과 함께 피켓을 들고, (삼성본관에) 일인시위를 하러 왔다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어머니가 삼성전자 사람들과 얘기 좀 하자 그런데 왜 가로막느냐 하면서 울부짖고 계셨거든요. 저는 그래서 가봤더니 서초 경비과장이 있더라구요. 제가 이 분들 진정하실 수 있도록 삼성에서 누구 좀 나와 보라고 중재하라고 얘기했거든요. 그게 명예훼손, 업무방해, 폭력 혐의가 됐더라고요. 선고유예를 받았는데, 그것도 참 억울하더라구요. 그 때 제가 이 사람들이 얼마나 바보같은 줄 알았던 게 동영상을 찍어서 그걸 보면, 덩치 큰 경비가 서있고 저는 영정피켓을 들고 서 있는 걸 보면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게 확인됐거든요.
김명복 : 그 고소고발은 당사자들이 절대 안합니다. 당시 (삼성) 관계자들과 합의를 볼 때, 우리 싸움에 함께 한 단체들이 주현이로 인해서 여러 가지 시위나 행동에 대해서는 일체 책임을 묻지 말아라. 그렇게 합의를 볼 때에도 약속하고 (삼성)관계자들과 이야기했어요. 이 일로 인해 여러 활동가들이 피해를 볼까봐 저 나름대로 생각했던 거에요.
공유정옥 : 삼성이 얼마나 유치하고 치사하냐면, 경비노동자들을 동원해서 그들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게 하고.. 당시 아버님도 갖은 수모를 겪으시고 협심증도 있었잖아요.
김명복 : 그 때 6, 7명이 저를 시위현장에서 끌어내면서 제가 삼성본관 앞에 그들과 실랑이할 때 손에 피를 흘려서 피묻은 손으로 유리벽을 수없이 쳤죠. 그러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죠. 그 때 응급실에 가서 진단받아보니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들었어요. 유병 요인이 쇼크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시술을 받았는데, 지금도 3개월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여기 계신 한혜경씨, 어머님, 활동가분들 이렇게까지 고생하시는 줄 몰랐어요. 거듭 죄스럽게 생각하고, 제가 도움이 된다면 오늘 이 자리가 조금이나 도움된다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삼성 변해야 합니다.
제게도 경험이 있지만, 처음에는 이들이 있을 수도 없는 합의내용을 감히 들고 나왔을 때.. 조금만 참으시면 결국 이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당시 싸움에 대해서도 저 나름대로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나중에 제가 주현이한테 그곳에 가서 만났을 때는, 우리가 이렇게 합의서를 받아냈다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항상 건강하셔야 합니다.
공유정옥 : 아버님, 지금도 셔틀버스 운행하는 일과 동료들을 열심히 조직하는 일을 하고 계신데.. 저는 주현씨가 아버님 정말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김명복 : 제가 주현이한테 그런 얘기한 적 있어요. 주현아,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있냐? 그러니까, 얘가 아버지잖아. 제가 상당히 사업적으로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어요. 생활상의 어려움도 많았었죠. 애들한테는 조금이나마 빚진 것을 갚고 죽었으면.. 솔직히 지금도 조금씩 갚아나가려고 했던 찰나였어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그 아이가 입던 잠옷과 런닝셔츠를 쇼파에 놓습니다. 저녁 때 되면 또 그아이가 잘 자리에 이부자리 깔고, 밥상에서도 주현이 밥부터 먼저 퍼 담습니다. 벌써 5년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지금도 주현이가 제 곁에서 떠났다는 게 실감나지 않아요. 나름대로 제가 글도 쓰고, 주현이 집에 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대화나누기도 해요. 지금 광화문 광장에도 세월호 가족들 항상 위로해야 합니다. 제 셔틀버스 앞에는 아직도 노란리본이 붙어져 있습니다, 동료들이 이제 그만 떼라는데 저는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떼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분명히 희망이 있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이종란 : 주현씨께 드리는 편지글 마지막으로 낭독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김명복 : 편지글 낭독하겠습니다.
2011년 12월 27일날 쓴 거에요.
날씨가 추워지면 주현이 생각이 더 난다. 겨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무엇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지.
죽음. 아니 아직 주현에게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명예, 억울함 어느 정도는 해결해야 내가 눈을 감는다.
2012년 12월
다시 찾아오는 추운 날씨, 정말 싫다.
아들 주현. 정말 없는걸까. 아직 믿기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 내가 가장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얼마 있으면 만날 것 같다.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사랑했노라. 미안했다. 그리고 지켜주고 싶었노라.
2015년 2월 2일
다시 찾아온 겨울. 그동안 이사도 했다.
우리 주현이가 정말 같이 살고싶었던 아파트.
그러나 지금 내 곁에 없다. 아니 더 좋은 곳으로 갔다.
부모의 가슴보다 더 따스한 곳으로.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 목숨 다하도록 사랑해주고 싶었다...
2015년 1월 9일
오늘도 춥다. 하지만 춥다는 말 못하겠다.
주현이는 추운 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그토록 괴로워하는 자식을 왜 몰라줬을까.
왜 그가 희생해야 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가 왜 먼저 가야 하는지.
신이 있다면 그가 먼저 가서는 안 될 일이다. 신이 계신지 의심스럽다.
2016년 1월10일
정말 그가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너무 많은 것을 남겨두었기에 꼭 돌아올 것이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주현, 그냥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
너무 많은 아쉬움만 그리움만 남겼기에,
아직 우리곁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지만은 않다.
우리 곁에 영원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눈물이 흐른다.
이종란 : 삼성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 수가 222명, 사망자가 76명이고. 주현씨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죽음의 행렬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대접받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어말하기 손님으로 나오셔서 진심을 다해 말씀 나눠주신 아버님께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제 입춘이 엊그제 지났고, 봄을 맞이하는 반올림 투쟁. 어찌보면 사람을 살리는 투쟁이라 생각하는데요, 아버님 말씀 통해서 우리도 꼭 이기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김 : 지금은 비록 극심한 추위 속에 고생하시지만,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외롭지않다는 것만 아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