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3 이어말하기

영은(영)) 오늘 이어말하기 손님은 출판노동자들입니다. 소개 부탁합니다.
미선(선)) 저는 출판노동을 하는 김미선입니다. 언론노조 그린비출판사 분회 조합원입니다.
재훈(훈)) 같이 일하고 있는 김재훈입니다.
영) 그린비출판사는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출판사라고 알고 있어요.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특히 그런데요. 회사를 다니시는 분들도 행복한지 궁금합니다. 내부 상황은 어떠한지요?
선) 조합을 만들기 전/후를 비교했을 때는, 조합 만든 후가 훨씬 나은 것 같아요. 노동 조건이 좋아짐은 물론이고, 회사 안에서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영) 노조를 만드셨는데, 힘든 일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회사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문제 제기를 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선) 우리 출판사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고, 많은 출판사들에서 직면한 문제일 거예요. 가령 다들 마감에 쫓기다 보니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심할 때는 철야, 주말근무도 하는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한 회사에서 2~3년 버티기 힘들어요. 출판계에 너무 만연한 문제라, 우리 회사가 특히 나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많은 분들이 과로에 시달려서 건강 문제를 겪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제기하고, 즐거운 업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훈) 우리는 다 창립 멤버인데요, 조합 만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기보다는 어떻게 하다 보니 조합 결성까지 온 것 같아요. 출판노동은 저임금 과노동 업종으로 알려져 있어요. 물론 그걸 알면서 업계에 진입하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알고 있고요.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업계에 들어오는 것인데, 좋은 책을 만든다고 노동 과정도 좋으냐, 노동자를 대하는 회사의 태도가 좋으냐, 노동자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느냐, 라고 물으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우리도 그랬던 것 같아요. 몸도 힘들었지만 그에 수반되는 차별이나 인격적 비하가 큰 상처로 다가왔고, 그런 문제들을 해소하자는 생각에서 조합을 준비하고 결성까지 하게 되었어요.
영) 다들 알다시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제외하고, 삼성에는 노동조합이 없습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분들이 삼성 직원이라면 ‘노동자’, ‘노동조합’이란 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그린비에 다니는 분들도 처음엔 ‘출판노동자’라는 말도 어색했을 것 같은데, 그 말이 자연스러워지게 된 과정은 어떤가요?
선) 내가 노동자다, 라는 인식을 한 것은 불과 4~5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은 어디 가서나 ‘출판노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고 자부심이 넘쳐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던 것 같은데요, 하루 이틀에 확 달라졌다기보다는 같이 일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뜻을 모으고,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자부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훈) 만드는 책이 사회비판적인 경우가 많아 내가 노동자라는 생각은 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노동자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내가 노동자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이전에는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한 쑥스러움, 망설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합을 만들고 나서는 노동자라고 말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 출판사 블로그에 들어가 글을 보면서, 출판노동자이기에 쓴 글이 역시 다르다, 는 느낌을 받았어요. 출판노동자들이 보시기에 반올림 농성장은 어때 보이나요? 우리 농성장에 온 소감은 어떠한지 듣고 싶습니다.
선) 밤에 찍은 사진들을 봐서 농성장 분위기를 잘 알지 못했고, 좀 어두운 분위기를 생각하고 왔는데, 막상 와 보니 솟대들이 서 있고, 고무신에 꽃도 심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까, 연대 온 우리도 덩달아 힘을 받는 것 같아요.
저희도 힘들게 싸웠던 적이 있는데, 때로는 결기에 차서 싸울 때도 있었지만, 피켓에 담는 문구나 SNS 선전에는 재기발랄한 문구들을 담고는 했어요. 결기에 찬 말들은 아니었지만, 회사를 상대로 직접 하기는 어려운 말들, 그런 말들이 오히려 정곡을 찌를 때 기분이 참 좋았어요. 여기 와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훈) 여기 있는 설치물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매우 잘 꾸몄고 의미를 잘 담아서 만드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도 피켓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형식이나 외관으로 내용을 꾸미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기도 하고요.
영) 사실 바로 엊그제 농성장을 이런 모양으로 바꾸었어요. 돌아가신 76명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솟대를 세우고, 꽃을 심었어요. 새 생명으로 피어나시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구요. 저희도 농성장에 꽃을 심으면서 ‘우리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버티고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웃음) 오늘 농성장에 오기 전에 준비한 내용이 있다고 하셨는데,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선) 저는 30대 초반의 나이인데요, 엇비슷한 시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 선/후배들이 일을 하면서 몸이 많이 상해 가는 걸 봤어요. 몸이 ‘고장 났다’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우리 사회와 기업이 노동자들을 살아있는 존재로 대하기보다는 기계나 소모품 대하듯 다루니까, 말 그대로 ‘고장 났다’라는 표현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아요.
조합 만들며 좋았던 점은, 몸이 아플 때 눈치를 덜 보며 쉴 수 있고, 병원에 갈 수 있었던 거예요. 몇 년 전에, 디스크, 허리 연골 퇴행, 자궁과 난소에 생긴 혹 등등 좀 큰 병이 한꺼번에 발견이 되었어요. 원래는 건강한 편이라고 자부를 했었거든요. 야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철야를 하면서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랬던 거란 생각이 들어요. 마침 몸이 한계에 다다랐을 시점에 노조를 만들게 되었는데 만일 조합이 없었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어요. (울먹)
영) 조합이 없었다면 회사를 그만두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길 하셨는데요, 며칠 전 <사표의 이유> 저자인 이영롱 님이 오셨을 때,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희생되신 분들은 ‘사표’도 써 보지 못한 채 목숨을 잃으셨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 대목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선) 여성노동자들에게 월 1회 생리휴가가 주어진다는 것, 필요할 때는 연차를 청구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병에 걸리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병가, 휴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어요. 조합을 하며 알게 되었고 요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러한 권리들이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많은 싸움 끝에 얻어낸 권리들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요.
건강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래도 회사는 건강한 듯 지속되어 가고, 그런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어요. 사실 출판업계에도 몸이 아파 그만두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요. 그래도 겉보기에 회사들은 매우 건강하고 좋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자괴감이 들기도 하죠. 삼성에서 일하며 고통 받으신 분들, 삼성을 상대로 싸우시는 분들은 얼마나 그 자괴감이 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 본인이 아픈 사정이 노조 문제로까지 이어지다 보니 이곳 싸움이 더 공감이 되었을 것 같아요. 추운 날 1인 시위 하며 싸워 본 경험도 있어서 우리 상황도 잘 아시는 것 같고요.
훈) 삼성 백혈병 문제는 예전에 조금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켜보면서 책도 읽고 행사도 참여하고 그랬는데, 몇 년 전부터 노조 만들고 그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관심을 못 쏟고 멀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린비 노조에 이어말하기 요청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간 너무 업데이트를 안 해서 그 사이 과정을 따라잡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잘 모르는 삼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우리가 조합 활동을 하며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합 활동하며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너무 당연한 거긴 하지만, 동료가 생겼다는 점이에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지만 터놓고 얘기하는 관계가 아닌 경우가 많았거든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다 일이 바쁘기도 하고, 가까워져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회사에서 은연중에 그런 걸 막았던 것 같기도 해요.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터놓는, 반감을 공유하는 모임이 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때로는 이간질을 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 앞에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노조 얘기가 나오고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내가 몰랐던 회사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동료가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노조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동료들과도 더 돈독해졌던 것 같고요. 그 점이 참 좋았어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봤는데, 삼성도 비슷한 것 같아요. 서로의 문제를 공유하는 것, 서고 돈독해지는 것을 차단하는 회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병에 걸려도 처음에는 개인의 건강 문제로만 인식했던 것 같고요. 그럼에도 그런 방해를 뚫고 노동자들이나 가족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질환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환경 문제인 걸 인식하게 되잖아요.
우리는 출판노조 치고는 노사 갈등도 격렬했고, 마음고생도 많은 편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전에는 ‘나는 책 만드는 노동자고, 내가 만드는 책이 좋은 책들이니 이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책에서 배운 것을 내가 있는 곳에서 해보려는 생각은 못했어요. 노조를 만들고 노조 활동을 하면서 내가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을 약간이나마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노조 활동의 의미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질문) 보통 노동현장의 문제가 저임금 장시간인데, 출판업계에는 그 특유의 문제가 있는 건가요?
훈) 출판사마다 제각각인데, 대체로 규모가 작아서 경영진의 태도에 크게 좌우되죠. 그 자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게 문제라고 특별히 짚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질문) 그린비는 정말 뭐가 가장 큰 문제였나요?
훈)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일단 노동시간이 과중했어요. 그런데 이러면 또 문제가 생기는 게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과 사정이 있어 그러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차등 혹은 차별이 생기잖아요. 누구는 야근을 많이 할 수 있고 또 누구는 집안이나 건강 사정으로 그럴 수 없는데, 그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임금 차등도 생기는 게 큰 문제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영) 그린비출판사의 싸움이 다른 출판사에도 영향을 주고, 다른 싸움에 연대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또 자기 어려운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그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고 힘도 되네요. 마지막으로 반올림에 응원하는 한마디 부탁합니다.
훈) 삼성에서는 개별적으로 접촉해 돈으로 해결을 보려고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돈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건데, 당연히 돈도 중요하죠. 특히 병에 걸린 분들은 치료비와 생계비가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반올림의 요구에서도 드러나듯 그 외에 진정성 있는 사과, 재발 방지도 매우 중요한데, 결국 그걸 하지 않기 위해 돈으로 덮으려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말하기 참여가 결정 난 후 작년 말에 작고하신 이지혜 씨 추도문을 읽었어요. ‘2015년에만 6명이 숨지고, 지금까지 76명이 사망했다’는 문구와 그 안에 담긴 숫자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러지 않는 건 삼성이 진정으로 야만적인 회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삼성은 한국을 대표한다고들 말하는 상징적인 기업이고, 돈과 권력으로 노동자나 노동 문제를 찍어 누르는 걸로 유명한 기업이잖아요. 그런 만큼 노조 결성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도 강한 것 같아요. 그런 삼성에 맞서 싸우는 일은 대단히 힘들겠지만, 그만큼 이 싸움들의 상징성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어말하기에 참여하기로 한 후에 급하게 다른 이어말하기 기록을 봤는데, 정말 삼성은 거의 모든 영역과 싸움에 걸쳐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삼성반도체 노동자들과 반올림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신경 못쓰고 있던 점이 죄송스럽고, 저도 앞으로 더 관심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선) 이 싸움에 시민들이 응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삼성 노동자들이 응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삼성에 하루 빨리 노조가 생겨서 당사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싸워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 만연한 여러 문제들도 그렇고, 노동 문제 역시 노동자 개개인이 피해 간다고 피해지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대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고 곁에 있는 소중한 동료를 지킬 수 있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꾸 드는 것 같습니다.

20160323 이어말하기
영은(영)) 오늘 이어말하기 손님은 출판노동자들입니다. 소개 부탁합니다.
미선(선)) 저는 출판노동을 하는 김미선입니다. 언론노조 그린비출판사 분회 조합원입니다.
재훈(훈)) 같이 일하고 있는 김재훈입니다.
영) 그린비출판사는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출판사라고 알고 있어요.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특히 그런데요. 회사를 다니시는 분들도 행복한지 궁금합니다. 내부 상황은 어떠한지요?
선) 조합을 만들기 전/후를 비교했을 때는, 조합 만든 후가 훨씬 나은 것 같아요. 노동 조건이 좋아짐은 물론이고, 회사 안에서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영) 노조를 만드셨는데, 힘든 일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회사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문제 제기를 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선) 우리 출판사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고, 많은 출판사들에서 직면한 문제일 거예요. 가령 다들 마감에 쫓기다 보니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심할 때는 철야, 주말근무도 하는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한 회사에서 2~3년 버티기 힘들어요. 출판계에 너무 만연한 문제라, 우리 회사가 특히 나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많은 분들이 과로에 시달려서 건강 문제를 겪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제기하고, 즐거운 업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훈) 우리는 다 창립 멤버인데요, 조합 만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기보다는 어떻게 하다 보니 조합 결성까지 온 것 같아요. 출판노동은 저임금 과노동 업종으로 알려져 있어요. 물론 그걸 알면서 업계에 진입하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알고 있고요.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업계에 들어오는 것인데, 좋은 책을 만든다고 노동 과정도 좋으냐, 노동자를 대하는 회사의 태도가 좋으냐, 노동자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느냐, 라고 물으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우리도 그랬던 것 같아요. 몸도 힘들었지만 그에 수반되는 차별이나 인격적 비하가 큰 상처로 다가왔고, 그런 문제들을 해소하자는 생각에서 조합을 준비하고 결성까지 하게 되었어요.
영) 다들 알다시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제외하고, 삼성에는 노동조합이 없습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분들이 삼성 직원이라면 ‘노동자’, ‘노동조합’이란 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그린비에 다니는 분들도 처음엔 ‘출판노동자’라는 말도 어색했을 것 같은데, 그 말이 자연스러워지게 된 과정은 어떤가요?
선) 내가 노동자다, 라는 인식을 한 것은 불과 4~5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은 어디 가서나 ‘출판노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고 자부심이 넘쳐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던 것 같은데요, 하루 이틀에 확 달라졌다기보다는 같이 일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뜻을 모으고,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자부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훈) 만드는 책이 사회비판적인 경우가 많아 내가 노동자라는 생각은 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노동자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내가 노동자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이전에는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한 쑥스러움, 망설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합을 만들고 나서는 노동자라고 말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 출판사 블로그에 들어가 글을 보면서, 출판노동자이기에 쓴 글이 역시 다르다, 는 느낌을 받았어요. 출판노동자들이 보시기에 반올림 농성장은 어때 보이나요? 우리 농성장에 온 소감은 어떠한지 듣고 싶습니다.
선) 밤에 찍은 사진들을 봐서 농성장 분위기를 잘 알지 못했고, 좀 어두운 분위기를 생각하고 왔는데, 막상 와 보니 솟대들이 서 있고, 고무신에 꽃도 심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까, 연대 온 우리도 덩달아 힘을 받는 것 같아요.
저희도 힘들게 싸웠던 적이 있는데, 때로는 결기에 차서 싸울 때도 있었지만, 피켓에 담는 문구나 SNS 선전에는 재기발랄한 문구들을 담고는 했어요. 결기에 찬 말들은 아니었지만, 회사를 상대로 직접 하기는 어려운 말들, 그런 말들이 오히려 정곡을 찌를 때 기분이 참 좋았어요. 여기 와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훈) 여기 있는 설치물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매우 잘 꾸몄고 의미를 잘 담아서 만드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도 피켓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형식이나 외관으로 내용을 꾸미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기도 하고요.
영) 사실 바로 엊그제 농성장을 이런 모양으로 바꾸었어요. 돌아가신 76명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솟대를 세우고, 꽃을 심었어요. 새 생명으로 피어나시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구요. 저희도 농성장에 꽃을 심으면서 ‘우리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렇게 버티고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웃음) 오늘 농성장에 오기 전에 준비한 내용이 있다고 하셨는데,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선) 저는 30대 초반의 나이인데요, 엇비슷한 시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 선/후배들이 일을 하면서 몸이 많이 상해 가는 걸 봤어요. 몸이 ‘고장 났다’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우리 사회와 기업이 노동자들을 살아있는 존재로 대하기보다는 기계나 소모품 대하듯 다루니까, 말 그대로 ‘고장 났다’라는 표현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아요.
조합 만들며 좋았던 점은, 몸이 아플 때 눈치를 덜 보며 쉴 수 있고, 병원에 갈 수 있었던 거예요. 몇 년 전에, 디스크, 허리 연골 퇴행, 자궁과 난소에 생긴 혹 등등 좀 큰 병이 한꺼번에 발견이 되었어요. 원래는 건강한 편이라고 자부를 했었거든요. 야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철야를 하면서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랬던 거란 생각이 들어요. 마침 몸이 한계에 다다랐을 시점에 노조를 만들게 되었는데 만일 조합이 없었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어요. (울먹)
영) 조합이 없었다면 회사를 그만두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길 하셨는데요, 며칠 전 <사표의 이유> 저자인 이영롱 님이 오셨을 때,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희생되신 분들은 ‘사표’도 써 보지 못한 채 목숨을 잃으셨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 대목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선) 여성노동자들에게 월 1회 생리휴가가 주어진다는 것, 필요할 때는 연차를 청구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병에 걸리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병가, 휴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어요. 조합을 하며 알게 되었고 요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러한 권리들이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많은 싸움 끝에 얻어낸 권리들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요.
건강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래도 회사는 건강한 듯 지속되어 가고, 그런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어요. 사실 출판업계에도 몸이 아파 그만두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요. 그래도 겉보기에 회사들은 매우 건강하고 좋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자괴감이 들기도 하죠. 삼성에서 일하며 고통 받으신 분들, 삼성을 상대로 싸우시는 분들은 얼마나 그 자괴감이 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 본인이 아픈 사정이 노조 문제로까지 이어지다 보니 이곳 싸움이 더 공감이 되었을 것 같아요. 추운 날 1인 시위 하며 싸워 본 경험도 있어서 우리 상황도 잘 아시는 것 같고요.
훈) 삼성 백혈병 문제는 예전에 조금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켜보면서 책도 읽고 행사도 참여하고 그랬는데, 몇 년 전부터 노조 만들고 그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관심을 못 쏟고 멀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린비 노조에 이어말하기 요청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간 너무 업데이트를 안 해서 그 사이 과정을 따라잡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잘 모르는 삼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우리가 조합 활동을 하며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합 활동하며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너무 당연한 거긴 하지만, 동료가 생겼다는 점이에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지만 터놓고 얘기하는 관계가 아닌 경우가 많았거든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다 일이 바쁘기도 하고, 가까워져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회사에서 은연중에 그런 걸 막았던 것 같기도 해요.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터놓는, 반감을 공유하는 모임이 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때로는 이간질을 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 앞에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노조 얘기가 나오고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내가 몰랐던 회사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동료가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노조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동료들과도 더 돈독해졌던 것 같고요. 그 점이 참 좋았어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봤는데, 삼성도 비슷한 것 같아요. 서로의 문제를 공유하는 것, 서고 돈독해지는 것을 차단하는 회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병에 걸려도 처음에는 개인의 건강 문제로만 인식했던 것 같고요. 그럼에도 그런 방해를 뚫고 노동자들이나 가족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질환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환경 문제인 걸 인식하게 되잖아요.
우리는 출판노조 치고는 노사 갈등도 격렬했고, 마음고생도 많은 편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전에는 ‘나는 책 만드는 노동자고, 내가 만드는 책이 좋은 책들이니 이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책에서 배운 것을 내가 있는 곳에서 해보려는 생각은 못했어요. 노조를 만들고 노조 활동을 하면서 내가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을 약간이나마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노조 활동의 의미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질문) 보통 노동현장의 문제가 저임금 장시간인데, 출판업계에는 그 특유의 문제가 있는 건가요?
훈) 출판사마다 제각각인데, 대체로 규모가 작아서 경영진의 태도에 크게 좌우되죠. 그 자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게 문제라고 특별히 짚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질문) 그린비는 정말 뭐가 가장 큰 문제였나요?
훈)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일단 노동시간이 과중했어요. 그런데 이러면 또 문제가 생기는 게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과 사정이 있어 그러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차등 혹은 차별이 생기잖아요. 누구는 야근을 많이 할 수 있고 또 누구는 집안이나 건강 사정으로 그럴 수 없는데, 그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임금 차등도 생기는 게 큰 문제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영) 그린비출판사의 싸움이 다른 출판사에도 영향을 주고, 다른 싸움에 연대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또 자기 어려운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그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고 힘도 되네요. 마지막으로 반올림에 응원하는 한마디 부탁합니다.
훈) 삼성에서는 개별적으로 접촉해 돈으로 해결을 보려고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돈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건데, 당연히 돈도 중요하죠. 특히 병에 걸린 분들은 치료비와 생계비가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반올림의 요구에서도 드러나듯 그 외에 진정성 있는 사과, 재발 방지도 매우 중요한데, 결국 그걸 하지 않기 위해 돈으로 덮으려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말하기 참여가 결정 난 후 작년 말에 작고하신 이지혜 씨 추도문을 읽었어요. ‘2015년에만 6명이 숨지고, 지금까지 76명이 사망했다’는 문구와 그 안에 담긴 숫자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러지 않는 건 삼성이 진정으로 야만적인 회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삼성은 한국을 대표한다고들 말하는 상징적인 기업이고, 돈과 권력으로 노동자나 노동 문제를 찍어 누르는 걸로 유명한 기업이잖아요. 그런 만큼 노조 결성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도 강한 것 같아요. 그런 삼성에 맞서 싸우는 일은 대단히 힘들겠지만, 그만큼 이 싸움들의 상징성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어말하기에 참여하기로 한 후에 급하게 다른 이어말하기 기록을 봤는데, 정말 삼성은 거의 모든 영역과 싸움에 걸쳐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삼성반도체 노동자들과 반올림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신경 못쓰고 있던 점이 죄송스럽고, 저도 앞으로 더 관심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선) 이 싸움에 시민들이 응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삼성 노동자들이 응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삼성에 하루 빨리 노조가 생겨서 당사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싸워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 만연한 여러 문제들도 그렇고, 노동 문제 역시 노동자 개개인이 피해 간다고 피해지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대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고 곁에 있는 소중한 동료를 지킬 수 있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꾸 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