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연극을 하고 있는 정성경입니다.
2017년 11월, 반올림 농성장에 처음 찾아갔을 때만 해도 제가 이렇게 발언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농성장에 찾아간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욕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부를 한답시고, 예술을 한답시고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연습실에서, 극장에서 글만 들여다 보고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왔습니다. 하지만 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분명 극장 밖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연극을 하는 사람답게 가장 큰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인을 통해 소개받고 찾아간 곳이 반올림 농성장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농성장이라는 곳에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찾아갔고, 단 한 번만 오기에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찾아오게 되고, 추운 겨울 농성장에서 모르는 사람과 잠을 자기도 하고, 땡볕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에도 멍하니 자리를 지키기도 하고, 갑자기 농성장에 빨간 조끼를 입고 들어와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는 만신 선생님도 만났습니다.
제가 왜 농성장에 계속 찾아왔겠습니까?
사람이니까,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니까 그랬습니다. 저는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핸드폰, 노트북, 길거리의 자동차, 아파트, 영화관, 즐겨보는 스포츠까지 그 어느 곳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굴지의 기업이 사람을 죽여가고, 사람을 소모품 취급해가며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질병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로 나의 삶이 꾸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피해 당사자도 아니고, 피해자 가족도, 유가족도 아니고, 법적 의학적 전문 지식을 가지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하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곳의 분들과 다른 사람들, 자신은 이런 일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어볼 수 있는 일. 제가 하는 공연을 통해 그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보신 분들이 제가 한 공연을 어떻게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갖게 된 확신은, 사람과 사람은 서로 노력하면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서로 마음을 기울이면 작은 힘들이 모여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올림 분들의 투쟁으로 얻어낸 삼성의 사과가 죽은 이들을 되살려내고 병든 몸을 낫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삼성이 그 이전의 만행들을 다시금 저지르기는 힘들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방어선이 생겼습니다.
여기 있는 이만신, 김용희, 이재용 선생님을 비롯한 부당 해고자들 역시 반드시 복직되어야 합니다. 이 분들이 복직되어 명예가 회복될 때,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는 인간이 숨쉬는 것과 같이 당연한 것이라 인정될 때, 사람들이 이 땅의 노동자들을 막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방어선이 하나 더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연극을 하고 있는 정성경입니다.
2017년 11월, 반올림 농성장에 처음 찾아갔을 때만 해도 제가 이렇게 발언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농성장에 찾아간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욕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부를 한답시고, 예술을 한답시고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연습실에서, 극장에서 글만 들여다 보고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왔습니다. 하지만 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분명 극장 밖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연극을 하는 사람답게 가장 큰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인을 통해 소개받고 찾아간 곳이 반올림 농성장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농성장이라는 곳에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찾아갔고, 단 한 번만 오기에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찾아오게 되고, 추운 겨울 농성장에서 모르는 사람과 잠을 자기도 하고, 땡볕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에도 멍하니 자리를 지키기도 하고, 갑자기 농성장에 빨간 조끼를 입고 들어와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는 만신 선생님도 만났습니다.
제가 왜 농성장에 계속 찾아왔겠습니까?
사람이니까,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니까 그랬습니다. 저는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핸드폰, 노트북, 길거리의 자동차, 아파트, 영화관, 즐겨보는 스포츠까지 그 어느 곳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굴지의 기업이 사람을 죽여가고, 사람을 소모품 취급해가며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질병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로 나의 삶이 꾸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피해 당사자도 아니고, 피해자 가족도, 유가족도 아니고, 법적 의학적 전문 지식을 가지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하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곳의 분들과 다른 사람들, 자신은 이런 일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어볼 수 있는 일. 제가 하는 공연을 통해 그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보신 분들이 제가 한 공연을 어떻게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갖게 된 확신은, 사람과 사람은 서로 노력하면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서로 마음을 기울이면 작은 힘들이 모여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올림 분들의 투쟁으로 얻어낸 삼성의 사과가 죽은 이들을 되살려내고 병든 몸을 낫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삼성이 그 이전의 만행들을 다시금 저지르기는 힘들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방어선이 생겼습니다.
여기 있는 이만신, 김용희, 이재용 선생님을 비롯한 부당 해고자들 역시 반드시 복직되어야 합니다. 이 분들이 복직되어 명예가 회복될 때,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는 인간이 숨쉬는 것과 같이 당연한 것이라 인정될 때, 사람들이 이 땅의 노동자들을 막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방어선이 하나 더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