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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스물일곱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삼성전기 노동자의 명복을 빕니다
2014.11.14 00:02 203

삼성에서 일했던 젊은 노동자가 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 아무개님은 1987년 생으로, 2005년 10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 입사하여 약 1년 6개월간 인쇄회로기판(PCB) 제조 공정에서 일하다 2007년 5월에 군입대를 위해 퇴사하였습니다. 2012년 25세에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2년 동안 항암치료와 골수이식치료를 받으며 투병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지난 6월 24일 스물 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고인이 아직 투병 중이던 2013년 12월, 누님께서 반올림에 제보의 글을 남기셨습니다. “푸르고 이쁘던 아이가 지금 저런 모습으로 누워서 생의 끝을 힘겹게 잡고 있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 글을 쓴다고 하셨습니다. “대한민국에 더는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는데, “힘이 없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글을 올린다고 하셨습니다.


“계란으로라도 계속 바위를 쳐야하니깐요. 계란 같은 힘없는 존재지만, 온몸을 터뜨리며 울려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눈 돌려 주고 동생같은 가련한 이가 더 생겨나지 않을꺼니까요. 그것이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니까요.”


2014년 1월 27일, 반올림은 고인을 비롯하여 세 명의 노동자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하였습니다.


산재신청을 준비하며 알게 된 고인의 근무 환경은 참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삼성전기 근무 당시 고인은 주야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하며 에폭시 수지와 납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습니다. 납은 혈액 독성 물질이며, 에폭시 수지 역시 고온에서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 림프조혈기계 발암물질을 발생시킵니다. 또한 면장갑이나 비닐장갑, 종이 마스크를 착용하였을 뿐 인체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보호구는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현장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늘 화학약품 냄새가 났고, 옆 공정에는 전리방사선인 엑스선 발생장치가 있었습니다.


고인을 진료한 서울대병원 주치의의 진료 소견서에도 이런 문제가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작업 중 유기용매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으나 벤젠 등 유기용매를 다루는 공정이 있는 건물에서 근무한 점, 그리고 작업 중 벤젠 사용시설에 정기적으로 출입하는 등 노출가능성이 있습니다. 기판을 자르는 과정에서 마찰열 등으로 에폭시 수지 등으로부터 변성된 유기화합물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수지와 금속을 사용한 회로기판 분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습니다.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상기 환자는 유기용제 등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근무했던 것으로 상기질병의 발병은 작업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산재보상을 청구한 지 다섯 달이 되도록 아직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재해조사 등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의 끝자락을 안타깝게 잡고 있던 청년은, 끝내 산재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남들보다 몇 배는 어렵고 고통스러웠을 고인과 가족들의 투병 생활에 삼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인의 넋이 이제라도 평화롭게 안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유족들의 슬픔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는 노동자가 생기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4년 6월 26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참고] 삼성전기 백혈병 및 암 피해 제보자 명단

 

이름

성별

발병․사망

상병명

근무사업장

담당업무

1

故도〇헌

27세 사망(’07년)

백혈병

부산사업장

인쇄회로기판 제조

2

故김효

23세 사망

백혈병

조치원사업장

인쇄회로기판 제조

3

〇〇

32세에 진단, 생존

백혈병

조치원사업장

인쇄회로기판 제조

4

故〇〇〇

’05년 사망

백혈병

-

인쇄회로기판 제조

5

故최〇〇

33세 사망(’09년)

백혈병

수원사업장

연구원(휴대폰 회로기판)

6

〇희〇

생존

재생불량성빈혈

수원사업장

연구원(휴대폰 회로기판)

7

故홍주〇

34세 사망(’10년)

피부암(흑색종)

수원사업장

생산직(엔지니어)

8

故이은○

36세 사망(’10년)

난소암

수원사업장

생산직(’92~’96년)

9

故김영○

21세 사망(’87년)

백혈병

수원사업장

연구원(’86~’87년)

10

故장○○

27세 사망(’14년)

백혈병

부산사업장

인쇄회로기판 제조





[고인의 누님이 반올림 카페에 올린 글]
(2013년 12월 11일, 반올림 카페 직업병 제보상담 코너에서 펌)

남동생이 현재 백혈병 투병 중입니다. 첫 항암치료로부터 1년 6개월의 힘든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동생은 아직 혈기왕성한 20대 중반. 이런 병이 있기 전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삶을 사는 건장한 청년이었습니다.

2012년 초에 목 부분에 주먹만한 혹이 발견되어서 처음 내원하였고, 여러 병원을 거치고 병명을 규명하는 데에만 수개월, 그 결과 급성 림프암 판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4차례의 항암치료와 퇴원을 반복하며 환자본인과 온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암세포가 잡히지 않고 다시 재발을 반복. 병원 측에서도 림프암 항암약으로는 더 손 쓸 수 있는 약이 없어서 백혈병으로 재판정, 현재는 백혈병동에서도 중환자에 속합니다.

국내 있는 모든 백혈병 관련 항암약을 사용했고, 한번 사용한 약엔 암세포들이 내성이 생겨서 더 사용할 수가 없어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얼마전엔 외국에서 약을 들여와서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제 동생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다더군요.

그러나 그마저도 차도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시한부 통보가 떨어졌구요.

동생은 이 사실을 모른 채 힘겹게.. 힘겹게.. 남아있는 정신을 놓지 않고 병원 콘크리트 벽 바깥의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삶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에게 생겨났을까.. 슬픔에만 빠져있었는데요.
항암치료를 하다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친척 중에 암을 앓은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생활패턴도 반듯했고 도무지 납득이 안가던 차에, 동생이 군대가기 전 2006 ~2007까지 1년 6개월간 부산 삼성전기 반도체관련 일을 했던것이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반도체관련 백혈병과 림프암 사례가 많더군요.

동생 몸이 지금처럼 악화되기 전에 동생에게 작업에 관련 이모저모를 물어봤었는데요.. FCB제조 BUMP반에서 근무를 했다고 하더군요. 회로기판을 만든 것을 옮겨다가 자르는 작업장이었다는데, 자르는 작업을 하려면 동생이 그 회로기판을 옮겨와서 해야하는데 그걸 가지러 2층으로 올라가면 그곳 사람들이 우주복 같은 것을 입고 일하고 있었다더군요. 그 말은 즉, 그 작업장이 유해물질관련 작업장임을 의미하는 거겠지요. 그곳만 올라가면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합니다.

동생은 완전 그 부서에 속해있지도, 별개이지도 않은 근무환경에서 무방비 상태로 그 작업을 1년 반을 했었던 겁니다. 그 얘길 듣는데 가족으로써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찢어졌었습니다. 누나로서 그렇게 힘든 일을 말리지 못했던 무지를 자책했습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반도체 작업장 내에서의 유해물질들이 백혈병 및 암 유발과 연관성이 있다는 판결이 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 어려움을 입으로 다 토로할 수 없을 만큼 힘든 투병을 지켜보고 있는 저희 가족들은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일개 서민들은 힘이 없고, 삼성이란 곳은 거대기업이고. 정부는 역학조사도 쉽게 허가치 않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싫어지기도 합니다.

백혈병동 내에서도 정신력 강하고 잘 이겨내기로 유명한 동생입니다.
삶이란 희망을 품으며, 가슴에 구멍을 내고 온 몸에 주사바늘이 하루에도 몇차례씩.. 대동맥까지 내어주면서 매일매일 피를 뽑고 피를 넣습니다.

패혈증 쇼크에 온몸에 물이차고 스스로 혈액을 돌리지 못해서 온몸에 피를 빼내었다가 투석기의 힘을 빌어 다시 그 피를 온몸에 집어넣으며 암과 싸웠습니다.

맛있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고통. 하루라도 병원 밖에서 쉬고 싶다는 작디작은 바램. 숨쉬는 것이 힘들어 눕지도 못하고 않아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일일히 다 말로 할 수 없을 고통들을 다 이겨내왔던 동생입니다.

그런데 시한부라니요.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나서 자꾸만 멈춰집니다.

아침길에 찬 서리에 죽어가고 있는 들꽃을 보고도 혼자 꺼이꺼이 웁니다. 찬서리에 체온을 잃고, 체모를 잃고, 야위고 검어지는 그모습이 어쩐지 제 동생 같아서요. 그 푸르고 이쁘던 아이가 지금 저런 모습으로 누워서 생의 끝을 힘겹게 잡고 있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요.

동생같은 사람이 더 없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더는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없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계란으로라도 계속 바위를 쳐야하니깐요. 계란 같은 힘없는 존재지만, 온몸을 터뜨리며 울려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눈 돌려 주고 동생같은 가련한 이가 더 생겨나지 않을꺼니까요. 그것이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