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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삼성전자 다발성경화증 피해노동자들에 대한 산재 재심사 불승인 결정을 규탄한다!|
2014.11.13 14:27 90

[2013/02/25 반올림 성명서]


삼성전자 다발성경화증 피해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부) 산재 재심사위원회 불승인 결정을 규탄한다!



인구10만 명당 3명 정도 발생한다는 희귀질환인 다발성경화증 피해자가 삼성전자에서만 무려 3명에 이른다. 그 중 한명(삼성전자 LCD 천안사업장 출신 여성노동자 이희진님)은 2010년에 근로복지공단에서 불승인 처분을 받고 2011년 4월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현재까지 1심 진행 중에 있다.


뒤이어 또 다른 삼성전자 다발성경화증 피해노동자 2명(삼성반도체 이소정님, 삼성LCD 김미선님)이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결정에 불복하여 노동부 산재 재심사위원회에 재심 청구를 했으나 지난 2월 22일자로 기각(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우리는 치료와 생존을 위해 산재보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피해노동자에게 ‘명백한 과학적 의학적 증거를 요구하며’ 산재 불승인 결정을 한 노동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척수에 염증이 생겨 몸에 마비와 통증을 수반하는 다발성경화증은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은 평생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한다. 또한 아픈 몸 때문에,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취업은 꿈도 꾸지 못한다. 삼성반도체 피해자 이00님의 경우는 언제 강직(마비와 통증을 수반한 경련)이 발생 할 지 몰라 매일 24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하며 하반신 마비까지 병이 진행되어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다발성경화증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산재보험급여(요양급여, 간병비, 휴업급여 등)가 절실히 필요하나 근로복지공단에 이어 노동부 재심사위원회 마저도 아픈노동자의 치료권과 생존권을 외면했다.


재심사 결정문에서는 “다발성경화증의 원인과 발병기전이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결과가 없으며 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발병가능성을 강하게 인정할 만한 일관된 연구결과가 부족하고 피재자가 유기용제에 어느 기간 동안, 어느 정도 노출되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재심사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상병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산재 재심사위원회의 판단은 대단히 무책임한 모습이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이 내부처리 지침에 따라 매우 협소하게 산재를 인정한 것을 비판해왔는데 재심사위원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재법 제37조에서는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상당인과관계’로 규정하고 있고, 법원은 상당인과관계를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또한 인과관계의 입증 정도에 관하여여도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대법원 98두10103 판결 등)”고 판결하고 있다. 산재법에 기초하여 구성된 산재 재심사위원회도 이러한 판단기준에 따라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음에도 그 역할을 다하지 않고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된 것만 산재로 인정해주겠다는 오류를 또 범한 것이다.


이번 다발성경화증 산재재심사 청구는 해당상병이 현재 의학적, 자연과학적 수준에서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희귀질환’이고 피해 노동자들이 근무했던 과거 근무환경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아 유해물질의 노출수준에 관한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유가 이들의 병이 산재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심사위원회는 위의 특징들을 이유로 불승인 하였다.

다발성 경화증의 경우 희귀질환이란 특성으로 연구결과가 많지 않고 현대의학과 과학의 한계로 명확한 원인규명이 되지 않았으나 다발성경화증이 자가면역성 질환의 일종이라는 점과 직업적 요인으로 유기용제와 교대근무에 노출되었을 경우 관련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하며 실제 두 피해노동자 모두 과로․스트레스에 노출되었고 유기용제에 계속적 노출 및 교대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연구결과를 근거로 업무와의 관련성을 충분히 추단해볼 수 있는 제반상황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제반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노출수준에 대한 판단은 더 납득이 되지 않는다. 피해 노동자들이 근무했던 시기는 1997년부터 2004년 정도까지 10여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이고 반도체 산업의 경우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피해노동자들이 근무했던 작업환경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삼성반도체 가공공정에서 근무했던 이소정님의 경우 감광용액(포토공정에서 사용되는, 벤젠 등 유기용제가 포함된 화학물질)을 밀폐된 공간에서 기계에 직접 주입하면서 높은 수준으로 노출되었고 개방형 기계를 상시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감광용액이 가열되면서 발생하는 벤젠 등의 유기용제에 역시 노출되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근로자의 증언도 사실확인서 형태로 제출했지만 근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재직 중에 18개월이나 월경이 없었고 헌혈도 거부당했고 몸무게 갑자기 많이 줄어드는 등 몸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 점도 업무와의 관련성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LCD판넬 조립부에서 일하던 김미선님의 경우는 어떤가. 12시간씩 주야 맞교대 등 연장·교대근무를 수시로 했고 계속되는 생산경쟁으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힘겨웠다. LCD판넬을 닦아내기 위해 IPA(이소프로필알코올)을 천에 듬뿍 묻혀서 판넬을 닦아내기 위해 하루에 한통(대략 200cc)씩 사용했고 IPA 냄새는 항상 작업장 안에 꽉 차 있었다. LCD판넬에 붙이는 회로기판을 붙이는 과정에서 에폭시 수지의 열경화 과정으로 벤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고 판넬을 꺼내기 위해 벤젠이 발생했을 기계 내부를 수시로 드나들었었다. 이러한 생생한 진술은 왜 듣지 않는건가.


재심사위원회는 구체적인 피해 노동자들의 작업내용 증언은 판단에 반영하지 않고 위원회가 객관적인 자료로 여기고 참고한 자료는 역학조사 결과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역학조사 결과는 형편없이 부실했다. 역학조사 내용은 ‘다발성경화증에 관한 문헌을 고찰하여 발병원인이 확실하지 않고 유기용제와의 관련성은 명확하지 않다고 결론, 유해물질 노출에 대해서는 사업주의 부실한 작업환경측정 자료와 작업장 근로자와의 인터뷰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피해근로자의 주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추가로 피해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대한 연구나 노출수준을 추정할만한 연구자료는 전혀 없었다. 재심사 심의회의 당시에 역학조사의 부실함에 대하여 강하게 문제제기 했지만 소용없었다. 피해 노동자와 함께 일했던 동료의 구체적인 진술보다 역학조사의 결과가 더 ‘객관적인’ 자료가 되었다.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상당인과관계라는 법리를 둔 취지는 의학적으로 규명된 질병에 한정하지 않고 제반사정을 모두 고려하여 업무와의 관련성이 추정되는 경우 산재로 폭넓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즉 현대 의학수준이 모든 질병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한 상태에서 작업환경이 질병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다른 원인이 명백히 그 질병을 발생시켰다는 반증이 없는 한 산재로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산재인정의 법리를 왜 산재 재심사위원회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만을 고집하여 산재노동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가.


이번 재결서 말미에 재심사위원회의 소수의견으로 “청구인이 근무 중 유기용제에 노출되었고, 직무스트레스를 불러오는 교대제 근무를 수행하였으며, 불량제품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었고, 입사 전에는 건강하였지만 재직 중 증상이 나타난 발병경위 등을 종합해볼 때, 다발성경화증의 원인을 특정하지 못하는 이상 업무 관련성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는데 이러한 소수의견이 더 이상 소수의견으로 남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상당인과관계의 법리를 무시하고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만을 고집하고 피해 노동자의 진술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서 판정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산재 재심사위원회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으며 그 결정을 규탄하는 바이다.


2013. 2. 25.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